김종원 작가

삼성에는 박사급 인력이 3천 명이 넘는다. 한국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는 기업이다. 그리고 삼성가의 여자들은 그런 인재들을 리드해야 하는 사람이다. 삼성가의 여자들 역시 많은 경험과 공부를 한 그들 못지 않은 재원이다.

하지만 지식과 경험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경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 삼성가의 여자들이 성공적으로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거기에서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유추’를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유추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언제나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다. 그녀는 1880년 6월 27일에 미국 앨라배마 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애초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19개월 되었을 때에 뇌척수막염으로 추정되는 병을 앓고 나서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고 말았다. 물론 나는 여기서 그녀의 장애와 그걸 이겨낸 그녀의 불굴의 의지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초점을 맞춰야 하는 건 바로 그녀가 가진 완벽한 유추의 기술이다. 그녀는 그녀의 자서전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에서 이런 이야기를 적었다.

“만일 내게 유일한 소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죽기 전에 꼭 사흘 동안만 눈을 뜨고 세상을 보는 것이다. 만약 내가 눈을 뜰 수만 있다면, 나는 내 눈을 뜨는 첫 순간 나를 이만큼이나 가르쳐준 내 스승 앤 설리반을 찾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손끝으로 만져 익숙해진 그 인자한 얼굴, 그리고 그 아름다운 몸매를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 모습을 내 마음 깊숙이 간직해둘 것이다.

그 다음엔 내 친구들을 찾아갈 것이며, 그 다음엔 들로 산으로 산보를 나가리라.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잎사귀들, 들에 핀 예쁜 꽃들과 저녁이 되면 석양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다. 다음날 일어나면 새벽에는 먼동이 트는 웅장한 광경을, 아침에는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을,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같은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또 하루를 보낼 것이다.

마지막 날에는 일찍 큰 길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아침에는 오페라하우스, 오후에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싶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건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 한복판으로 걸어 나가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쇼윈도에 진열된 아름다운 물건들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 사흘 동안이나마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신 나의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리라.”

나는 흔히 말하는 감각이 떨어졌다고 느낄 때마다 그녀의 이 글을 읽는다. 이 글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눈이 보이고 귀가 들리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예민한 감각으로 세상을 가슴에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그녀가 이렇게 많은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요인이다.

사실 그녀의 업적은 정상인이라도 이루기 어려운 일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그녀가 보지도 듣지도 못하지만 많은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큰 요인은 성질 또는 관계를 가질 것이라고 추리하는 일인 ‘유추’ 능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알고 있는 기본 지식을 통해 머릿속에서 수없이 빅뱅을 일으키며 새로운 사실을 유추해 낸 것이다. 그녀 자신도 자신의 유추 작업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관찰한다, 나는 느낀다, 나는 상상한다…. 나는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인상과 경험, 개념을 결합한다. 이 가공의 이미지를 가지고 내 머릿속에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세계의 안과 밖 사이에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닮은 것들로 가득 찬 바다가 있지 않은가.

내가 손에 들고 있는 꽃의 신선함은 내가 맛본 갓 딴 사과의 신선함과 닮았다. 나는 이러한 유사성을 이용해서 색에 대한 개념을 확장한다. 내가 표면과 떨림과 맛과 냄새들의 특질에서 이끌어낸 유사성은 보고 듣고 만져서 찾아낸 유사성과 같은 것이다. 이 사실이 나를 견디게 했고 눈과 손 사이에 놓인 간극에 다리를 놓아주었다.”

헬렌 켈러가 이렇게 강력한 유추 능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녀만의 감정이입에 있다. 감정이입은 유추를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여기서 최고의 감정이입을 보여주는 과학자 한 명을 소개한다. 그녀의 이름은 바버라 매클린턱(Barbara McClintock)인데, 옥수수를 비롯한 다양한 생물의 유전자 연구를 한 여성이다.
식물들과 함께 유전자 물질을 조합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낸 그녀는 그 결과 개별 식물 하나하나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그녀가 다른 과학자들과 다른 것은 그녀는 식물을 그냥 식물로 보지 않고, 몇 년을 사귄 친한 친구처럼 여겼다는 것이다. 그녀에 대한 재미있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 그녀는 유기조직에 너무 깊게 빠진 나머지 ‘그녀가 실제로 유전자나 염색체가 되는 것처럼 느낄 정도’로 감정이입을 했다는 사실이다.

영국의 소설가인 버지니아 울프 역시 이런 감정이입을 통해 좀 더 깊이 있는 작품을 쓸 수 있었는데, 그녀는 작업 중에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사물이 될 때까지 계속 앉아서 그것을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상대나 사물을 가장 완벽하게 이해하는 방법은 바로 스스로 사물이나 상대가 되는 것이다. 자신을 버리고 자신이 이해하고 싶은 것이 될 때 가장 완벽한 이해가 가능해진다.

결국 헬렌 켈러가 장애인이었음에도 유추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듣거나 볼 수 없었던 것과 느낌이나 냄새로 그리고 맛으로 알 수 있는 것들 사이에서 극한의 감정이입을 통해 유사성을 이끌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상인이라고 할지라도 세상의 모든 것을 듣고, 보고 느낄 수는 없다. 여기에 유추의 중요성이 있다. 유추는 자신이 지각하지 못했던 것들에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일단 자신의 감각에 솔직해지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변화할 수 있고, 자신을 지킬 수 있으며 미래를 이끌 수 있는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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