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키스’ 고소했다 무고죄 위기… 대법이 살렸다
‘강제 키스’ 고소했다 무고죄 위기… 대법이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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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성희롱(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직장 내 성희롱(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증거 없어 강제추행 무죄 나오자 상대 무고 역공

1심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재판부 모두 유죄판결

대법 “강제추행 유죄 아니라고 해서 무고는 아냐”

“신체접촉 용인했어도 언제든 번복할 자유 있어”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성추행 등으로 고소한 사건에서 해당 사실이 증명되지 못했더라도 이 사건이 무고가 되는 건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최근 무고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34)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14일 밝혔다.

때는 2014년 6월. A씨는 같은 직장 선배 B씨를 고소했다. 자신을 기습적으로 키스를 하는 등 강제 추행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검찰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B씨에 대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후 A씨는 항고(상급기관 검찰청이 다시 기소 여부를 검토하는 것)도 해보고, 재정진청(검찰이 기소하지 않더라도 법원에 정식 재판을 열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냈다. 하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실상 법적으로 B씨를 처벌할 방법은 사라졌다.

이에 B씨가 역공에 나섰다. 2016년 1월 B씨는 무고죄로 A씨를 고소했다. B씨의 고소도 쉽게 진행되진 않았다. 같은 해 9월 검찰은 A씨 역시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항고 역시 기각됐다. B씨 역시 마지막 단계로 재정진청을 냈다. 이번 결과는 A씨와 달랐다. 2017년 2월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은 A씨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기습 키스 등 성추행 상황 전 자연스러운 신체접촉이 있던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포착된 것도 A씨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A씨가 주장하던 강제 추행이 발생한 장소엔 CCTV가 없었다.

A씨가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추행이 일어났다는 장소 인근 편의점에 사람이 있었는데도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성추행.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성추행.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재판 과정에서 B씨가 “다 기억난다. 제가 죄송하다. 잘못했다. 용서해달라”는 말의 하는 녹취록이 공개됐지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녹취록에 대해 B씨는 “처음 겪어본 상황에 어떻게든 자리를 벗어나고 싶고 당황해서 인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결국 국민참여 배심원과 재판부는 동일하게 A씨의 유죄를 선고했다. A씨는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2심에서도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평의와 재판부가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경우 해당 판단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배심원 평의와 재판부 의견이 일치했을 경우 그 판단이 뒤집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대법원 3부는 11일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성범죄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가해자와 관계나 구체적 상황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며 “개별 사건에서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무고죄가 성립하려면 신고사실이 허위라는 것을 검찰이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A씨가 B씨가 다른 신체접촉이 있었던 점, A씨가 도움 요청을 하지 않은 점 등이 강제 추행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고도 설명했다.

재판부는 “불기소 처분이나 무죄판결이 내려졌다고 해서 신고내용을 허위라고 단정해선 안 된다”며 “피해자의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진정한 피해자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기준을 내세우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씨가 일정 수준의 신체접촉을 용인한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언제든 (그와 관련된) 동의를 번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예상 범위를 넘어선 접촉은 거부할 자유가 있다”며 “이전에 신체접촉이 있었다고 해서 A씨가 기습추행을 동의·승인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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