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한일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일본은 북한 시장을 노리고 우리를 견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북한 핵동결로 우리가 ‘민족주의적 분노’에 들끓는 사이 일본은 북한 시장 개입을 서두르고 있다. 트럼프가 말하는 북한의 ‘경제강국’ 건설은 바로 아베에게 북한 진출의 길을 열어주겠다는 의미를 아직 우리 지도자들은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나 긴축재정으로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가 북한의 경제개발에 쓸 돈이 어디 있겠는가. 알고 보면 철도와 항만, 도로와 발전소 등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모두 일본이 건설한 것들이다. 우리는 다가오는 통일시대를 맞으며 해방 직후의 한반도 정세와 열강들의 각축전에 대해 다시한번 재고찰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해방 후 한반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미국과 소련의 전후 구상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적용한다는 생각에 따라 ‘조선의 자유·독립’을 연합국의 목표로 제시했다. 그러나 유럽과 아시아에서 두 개의 적과 싸운 스탈린은 독일과 일본이 다시 일어나 폴란드나 한반도를 대소련 공격의 우회로로 이용하는 걸 두려워했고 이를 막기 위해 한반도에 친소련 정권 수립을 원했다. 이런 미·소의 대립과 냉전이 없었다면 한반도 분단은 없었을 것이다. 당시 신탁통치 구상이란 게 그렇게 비합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당시 미·영·중·소 4국이 공존하는 세력 균형을 위해 밸런스 파워가 필요했다.

조선 독립을 보장한 카이로선언은 윌슨적인 이상주의를 토대로 하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론 태평양 전쟁이 연합국 측에 유리하게 진행되면서 조선 독립을 둘러싼 국제적 권력관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개석 총통은 소련의 야심을 경계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제 승인을 받는데 적극적이었지만, 인도 식민지를 갖고 있던 영국은 조선의 즉시 독립을 반대했다. 미국 정책의 핵심은 소련과의 공동 행동이었다. 때문에 한반도를 4대국의 신탁 통치하에 두고 장래의 독립 준비를 시키자는 것이었다. 분단이 아니고 통일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결국 미국과 소련 정책을 잘 알고 행동한 사람이 유리하게 됐다. 이승만과 김일성이다. 미국 입장에서 김구는 임시정부의 대표였기 때문에 신탁통치의 걸림돌이 된다고 봤다. 박헌영은 조선인민공화국이라는 독자적 세력을 가졌으니까 소련의 걸림돌이 된 것이다. 한국 지도자들이 국제 정치에 무지했고 내부 대립 때문에 통일을 못 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미·소 패권은 도외시한 채 내부 대립이 너무 심했다. 싸움을 자제하면서 ‘이 사람들이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자’라거나 단합하는 정치적 지혜가 필요했는데 그걸 보지 못했다. 그러나 역시 미·소가 아니었다면 통일국가는 됐을 것이다. 다만 의견 일치가 어려웠으니까 무력에 의한 통일, 즉 내전이 일어나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고 본다. 이상하게도 냉전이 끝나고 민주화가 되고서 좌우 이념 대립이 강해졌다. 

이념의 렌즈를 통해 현실을 해석하되, 현실과 이념의 균형을 잃어버리면 곤란해지는데 지금 한국이 그렇다. 이념 과잉이라고 할까. 현실 이상으로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것, 현실을 너무 대립적 시각으로만 보는 게 문제다. 한반도 분단이 미·소 냉전의 산물이었다는 이 조건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소련 대신 중국의 부상으로 미·중 대립이 냉전 시절처럼 심각해지면 한반도 안정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현 상황과 국제 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기술, 다시 말해 외교력을 익혀야 한다. 일본과의 역사 논쟁도 마찬가지다. 위안부 재단을 한국 정부가 해산시켰기 때문에 여전히 불신이 있다. 얼마 전 우리는 김정은의 전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가 북한에서 체포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가 일본 내각으로부터 북한 지도자들의 의중을 잘 살피라는 ‘특명’을 받고 평양에 파견되었다는 것은 결코 비밀이 아니다. 그는 일본이 북한 시장에 뛰어드는 정책의 선발대였던 것이다. 우리가 일본에게 북한 시장을 빼앗기고 나면 통일대박은 물 건너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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