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영화 ‘명량’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왜군과 백병전을 벌이는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1597년 9월 16일자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은 왜군과 백병전을 치르지 않았고, 거제현령 안위가 백병전을 치렀다.  

그러면 9월 16일자 『‘난중일기』의 요약을 읽어 보자. “이른 아침에 특별정찰부대가 많은 적선이 명량으로부터 우리가 진치고 있는 곳을 향해 달려온다고 보고했다. 곧 모든 배에 명령하여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갔더니 적선 130여척이 우리 배들을 둘러쌌다. 여러 장수들은 적은 군사로 많은 적과 싸우는 형세임을 알고 모두 도망칠 꾀만 내고 있었다. 나는 노를 빨리 저어 앞으로 나아가며 지자(地字), 현자(玄字) 등 각종 총통을 마구 쏘았다. 탄환이 폭풍우같이 날아갔다.  그러자 적의 무리가 감히 대들지 못하고 쳐들어왔다 물러갔다 하였다. 그러나 우리 배가 여러 겹으로 둘러싸여 형세가 어찌 될지 알 수가 없어, 배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쳐다보며 얼굴빛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나는 조금도 동요하지 말고 힘을 다해서 적을 쏘아 맞히라고 하였지만, 여러 장수의 배를 돌아보니 이미 1마장 정도 물러났고, 전라우수사 김억추가 탄 배는 멀리 떨어져 가물가물하였다. 그래서 호각을 불어 중군에게 기를 세워 군령을 내리도록 하고 또 초요기를 세웠더니, 중군장인 미조항첨사 김응함의 배가 차츰 내 배 가까이 왔으며, 거제현령 안위의 배가 그보다 먼저 왔다. 그리하여 두 배가 적진을 향해 앞서 나가는데, 적장이 탄 배가 그 휘하의 배 3척에 지시하자 일시에 안위의 배에 개미떼처럼 달라붙어 서로 먼저 올라가려고 하였다. 안위의 격군 7∼8명이 물에 뛰어 들어 헤엄을 치니 거의 구하지 못할 것 같았다. 안위와 그 배에 탄 사람들이 죽을힘을 다해서 몽둥이를 들거나 긴 창을 잡거나 또는 돌멩이를 가지고 마구 후려쳤다. 

배위의 사람들이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자 나는 뱃머리를 돌려 바로 쫒아가서 빗발치듯 마구 쏘아댔다. 적선 세 척이 거의 뒤집혔을 때 녹도만호 송여종과 평산포 대장 정응두의 배가 뒤쫓아 와서 서로 힘을 합쳐서 왜적 한 놈도 살아남지 못하게 하였다.”

이렇듯 안위의 배는 왜선 3척과 백병전을 했고 이순신 장군 배가 도왔다. 한편 영화 ‘명량’에는 경상우수사 배설이 명량해전 직전에 거북선을 불태운 것으로 나온다. 또한 1951년에 온양온천역 광장에 세워진 ‘이충무공 사적비’에도 ‘거북선 2척이 명량해전에 참전하였다’고 적혀 있다.  이는 이순신의 조카 이분이 지은 ‘이충무공 행록’에 근거한 듯 보인다.

“8월 18일 회령포에 이르니 전선이라고는 단지 10척 뿐이었다. 공은 전라우수사 김억추를 불러서 병선을 거두어 모으게 하고, 또 여러 장수들에게 분부하여 거북선 모양으로 꾸며서 군사의 위세를 돋우도록 했다.” 

그런데 이순신의 조카 이분은 명량해전 전후로 이순신 휘하에 종군한 사실이 없다. 아울러 거북선을 8월 18일 이후 한 달도 안 돼 만들었다는 것도 의문이다. 이순신은 왜군들이 추격해오자 진영을 수차례 옮겨 거북선을 건조할 상황이 아니었고, 건조 인력·자재를 어떻게 마련했는지도 알 수 없다. 더구나 명량해전 때도 장수들은 겁에 질려 있었는데 군사의 위세를 돋우도록 거북선을 만들었을 지도 의심이 간다. 요컨대 거북선은 건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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