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말도 있다. 모두 좋은 뜻은 아니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대놓고 속 다르고 겉 다르게 행동한다. 진짜 속마음인 혼네(本音)와, 겉으로 꾸며서 드러내는 다테마에(建前)를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겉과 속 다른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속으로는 분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려버리고 싶어도, 겉으로는 헤헤 하고 웃으며 상대의 비위를 맞춘다. 혼네를 감추고 다테마에를 보이는 것이다. 다테마에를 잘 해야 훌륭하다고 인정받는다. 감정을 곧이곧대로 드러내는 사람은 성숙하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니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다테마에를 잘 하기 위해 애를 쓴다.

성질이 불같이 급해서, 울지 않는 새는 죽여 버린다고 했다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일본 통일의 기틀을 마련했다 해서 일본인들로부터 영웅 대접을 받는다. 그가 데리고 다니던 모리 난마루(森蘭丸)라는 시동이 있었는데, 눈치가 장난이 아니었다. 귤을 가득 담은 바구니를 들고 가는 것을 본 오다 노부나가가 “저러다 넘어질라”고 하자 바로 넘어져 버렸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다. “방문이 닫히지 않은 것 같다”고 하자, 닫혀있던 문을 일부터 탁 소리가 나도록 다시 닫았다.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어 일본의 통일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인간이다. 우리에게는 원흉이지만 일본인들에게는 대단한 영웅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일본으로 건너가 정세를 살피고 돌아온 조선의 사신은 그가 쥐의 상이라고 임금께 보고했다. 쥐의 상을 한 리더가 아득한 시절 일본에 있었던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눈치가 백단이었다. 오다 노부나가 밑에 있을 때, 겨울이면 오다 노부나가의 짚신을 저고리에 품어 따뜻하게 하였고, 못 생겼다고 놀려 대도 그저 헤헤 하고 웃을 뿐이었다. 식당에서 밥을 해 바치던 때에도 주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갖은 꾀를 다 썼다. 그 덕분에 시장에서 바늘을 팔며 떠돌던 인간이 결국 일본의 최고 자리에까지 올랐던 것이다.

일본인들이 속마음을 숨기고 다테마에를 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다. 일본은 칼이 다스리던 나라다. 중세 봉건 시절까지 사무라이들이 칼로 호령을 했다. 칼 앞에서 거짓말을 하거나 본심을 잘못 보였다가는 당장 목이 날아갈 수 있었다. 때문에 항상 눈치를 살펴야 했고 속마음을 숨기고 거짓으로라도 웃어 보이며 비위를 맞춰야 했다.

겉으로는 영혼이 없는 것처럼 헤헤거려도, 속으로는 복수의 칼을 가는 게 일본인들이다. 쉼 없이 눈치를 살피다 상대가 힘이 빠졌다 싶으면 순식간에 이빨을 드러내고 물어뜯는다. 칼로 싸우고 칼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지만, 내가 더 강하다고 판단되면 주저 없이 칼을 휘두른다. 그것이 그들의 규칙이고 삶의 방식이다.

일본인들로부터 “미안합니다!” 소리를 들으려면 그들보다 강해져야 한다.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것이 그들을 이웃으로 둔 우리들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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