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천지TV=김미라·장수경 기자] 충북 진천군 덕산면 용몽리.
길가에 독특한 건물 하나가 취재진의 눈에 들어왔다.

거무스름한 나무 벽, 함석으로 된 합각지붕
운치 있는 오르내리창.

덕산양조장이라는 나무간판이 걸린 목조건물은
마치 옛 영화의 한 세트장처럼 고색창연하기만 하다.

한국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 속에서도
꿋꿋이 90년을 지켜온 술도가.
이곳은 덕산양조장이다.

술도가의 보물이라 할 수 있는 발효실에 들어서자
시큼털털한 누룩내가 진동을 한다.

3대째 가업을 이어가며 세월의 더께만큼이나
농익은 술이 익어가고 있는 그곳에서 이방희 대표를 만났다.

양조장의 막걸리는 보통 13~16도의 알코올 도수를 가지는데
우리가 마시는 막걸리는 이 원주에 물을 타 6도로 희석한 것이다.

물의 비율이 달라지는 탓일까?
보통의 양조장에선 이 진땡이(원주, 다른 말로 모로미)를 잘 보여주지 않는다.

막걸리 원주를 한잔 할 수 있냐는 호기심 섞인 기자의 질문에
이 대표는 1초의 망설임도 없다.

감칠맛 나는 원주가 옹기에 찰랑찰랑.
귀한 손님에게만 내준다는 술 맛은 과연 어떨까.

대대로 이어오는 종갓집에 그 집안의 맛을 결정짓는 씨간장이 있듯

덕산양조장엔 술의 어미 격인 씨주모(밑술)가 있다.

엄마 품에 잠든 아이가 새근새근 잠을 자듯
구순을 훌쩍 넘긴 빛바랜 독안에서 막걸리가 보글보글 익어간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왕겨의 비밀.

날씨가 덥고 습할 땐 습기를 빨아들였다가
건조해지면 다시 내뿜어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준다.

70센티미터 두께로 왕겨가 덮여있는 이 방은
술 항아리가 있는 발효실 바로 위쪽 천장과 바로 맞닿아 있다.

술은 그렇게 하늘의 시간과 땅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고
바람과 사람의 손길 속에 조심스럽게 익어간다.

사람이나 술이나 ‘발효’라는 농익음 끝에 맛있는 향기를 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인가 보다.

우리 인생의 시간도 그렇게 향기롭게 익어가길 바래본다.

고구려 건국담에 술에 얽힌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우리 민족의 술의 역사는 30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중에서도 막걸리는 우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술 중 하나며
우리의 생활 속에 면면이 이어온 전통이다.

막걸리가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려 때로서

고려시대 뛰어난 문장가였던 이규보(李奎報)는
‘나그네 창자를 박주(薄酒-막걸리)로 푼다’고 시구절을 읊었고

고려 시대 문인이자 학자인 이달충(李達衷)의 시에도
‘뚝배기 질그릇에 허연 막걸리’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를 보아 예나 지금이나 막걸리는 서민의 술로서 사랑받아왔음을 알 수 있다.

가벼운 주머니로 끼니를 해결하고,
막걸리 한 사발로 목을 축이며
인생의 애환을 달랬던 그때 그 시절.

그래서 막걸리는 우리의 삶이자 문화이다.

세계 어느 누구도 모방할 수도, 만들어낼 수도 없는 우리만의 콘텐츠인 막걸리.

이제는 막걸리의 가치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일이 우리의 몫으로 남아있다.

오늘도 한잔 막걸리로 고향을,
추억을 소환해본다.

(영상취재: 김미라·장수경·이시문 기자, 편집: 김미라 기자)
(촬영협조: 진천 덕산양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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