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소리 수궁가를 소설화 한 조선후기 <별주부전>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소장중이다.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

한국 대표 ‘트릭스터’ 토끼ㆍ자라 살펴보기

[천지일보=이지영 기자] 토끼 캐릭터는 약삭빠르고 재빠르며, 꾀가 많은 약자의 이미지를 떠올려 볼 수 있다. 실제 토끼가 그럴 리야 없겠지만 사람들이 투영시킨 토끼의 이미지는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존재로 다가온다.

이는 누구에게도 속고 싶지 않지만 늘 어리석기만한 우리의 모습이 ‘토끼’에게 고스란히 나타나있기 때문이 아닐까.

판소리로 유명한 ‘수궁가’의 주인공 토끼와 자라를 통해 대표 트릭스터들의 한판 승부를 들여다보자.

그간 용왕과 토끼만 주목해 왔던 수궁가 연구에 대해 일각에선 자라에게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스토리 구조상으로는 용왕과 토끼의 위기와 극복을 반복하고 있다.

대립은 용왕과 자라로 대표되는 강자의 세계와 토끼와 여우로 대표되는 육지세계 약자의 갈등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 대립이 다른 판소리처럼 ‘권선징악’을 목표로 한 것도 아니다.

수궁가에서는 무엇보다 용왕에 대한 상반된 태도를 가진 토끼와 별주부의 대립을 살펴볼 만하다.

온갖 병에 걸린 용왕은 부패하고 무능한 봉건국가 그 자체를 의미하며, 별주부와 토끼는 무너져가는 봉건국가를 바라보는 태도가 다르다.

여기서 토끼는 자기보다 힘센 존재에 의해 끊임없이 핍박을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토끼는 별주부의 유혹에 속아 수궁이 현실의 고난을 해결 할 수 있는 꿈의 공간이라 믿고 수궁행을 택하게 된다.

그러나 토끼가 직접 가 본 수궁은 육지보다 더 큰 위험이 도사린 세계임을 간파하고 용왕의 토간 요구를 거부하고 더 나아가 용왕을 철저하게 조롱하고 희화화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편 별주부는 수궁에 속해 있는 지배층이나 여타 수궁 인물과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육지에 나가 토끼 간을 구해오라는 용왕의 호소에 모든 신하는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모른 척하지만 이때 별주부는 말석에서 기어 나와 목숨을 건 육지행을 자처한다.

특히 자라와 토끼는 이야기 전후반에서 지략을 발휘해 위기를 모면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여기서 토끼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트릭스터로 여길 만큼 ‘꾀’가 많다. 별주부도 토끼를 대적할 만한 ‘지략’으로 토끼와 매우 치열한 대결을 펼친다.

특히 토끼를 수궁으로 데려가는 장면에서 별주부의 유도심문과 회유, 치밀한 전략은 매우 사세판단이 빠르고 상황에 대한 빠른 돌변과 의뭉스러우면서도 꾀바른 별주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토끼와 별주부의 지략 다툼 뒤의 어리석음도 만만치 않다. 토끼는 용궁에 잡혀가서도 사태파악을 못하는 우둔함을 보여줬고 자라는 육지에 처음 나와 토끼를 ‘토 선생’이라고 부른다는 것이 발음을 잘못해 ‘호 선생’을 불러 호랑이와 맞닥뜨리게 된다.

이 지략담은 속고 속이는 구조이다. 결국 토끼와 별주부의 모습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인생 역전과 실패, 경쟁에서 쫓고 쫓기며 속고 속이는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트릭스터: 세계 여러 민족의 신화나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장난꾸러기 또는 어릿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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