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日에도 없는 세계 유일한 표현… 가슴앓이 외 견위수명·예술 근간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한국인은 한의 자궁에서 태어나 한의 젖을 먹고 자라고 한을 견디며 살아가고, 한을 남기고 죽는다.” (시인 고은)

한국은 수많은 외침을 이겨낸 보기 드문 민족이다. 전쟁에서 이긴 것으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21세기에는 경제와 문화강대국을 꿈꾸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현실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흔히 한민족의 DNA라 불리는 ‘한(恨)’이 꼽힌다.

한국인이나 외국인이나 한결같이 “한국인들은 한이 많은 민족인지라 새도 울고 바람도 운다고 말한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인들은 모든 동식물 및 사물에 ‘울다’라는 술어를 붙인다. 그만큼 한국인이라면 누구든지 가슴에 응어리가 맺혔다. 이는 1990년대 후반부터 성시를 이루는 노래방 문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혹자는 “가슴 속에 맺힌 한을 풀려다 보니 노래방이 전국 방방곡곡에 들어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은 가장 한국적인 슬픈 정서이다. 이웃해 있는 중국과 일본에는 한 대신 원(怨, 寃)이 있다. 중국 고전이라 일컫는 <논어> <대학> <중용> 등에서 한에 대한 말은 찾을 수 없으나 원에 대한 글만 있다.

한은 불안감에서 찾을 수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오르면 한국 역사는 내란과 외침, 민란으로 이어졌다. 끊임없는 전쟁은 백성들이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을 뿐더러 퇴행적인 심리현상이 나타났다. ‘밤새 안녕하십니까’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라는 인사는 언제 어떻게 상황이 바뀔지 모르는 불안감에서 비롯됐다.

아울러 유교사상이 빚은 계층구조로 말미암아 천민이나 노비들이 인간으로서 자유를 누리거나 살아갈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이들은 유교질서 아래 뿌리 깊은 한을 간직했다. 이 외에도 남존여비사상, 사대부의 괴롭힘에 따른 민중의 삶 등이 한을 형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새벽부터 많은 노동을 해야 하는 옛 여인들은 <시집살이> <꼬댁각시> 등 한탄조의 음을 입에서 흥얼거렸다.

한(恨)은 한계(限界)와 곧장 연결된다. 시시때때로 짓눌렸던 한민족이지만 그 한들이 모이고 모여 독립운동과 같이 침략국에 대한 저항을 하는 등 한이 지닌 잠재력을 역사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한국전쟁으로 이산가족이 생겨났고 경제성장에 발목이 잡혔으나 전쟁의 한을 한데 모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늘 외압에 시달렸던 한민족은 강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터득했다. 이에 따라 한이 생겼다고 해서 마냥 주저앉을 수만은 없었으며, 투쟁해야만 했고 이겨야만 했다. 이는 기싸움과 기마전, 격구 등 전래놀이에서 잘 나타난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은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예부터 한국인은 두고두고 생긴 한을 민간신앙과 민요·판소리·종교를 통해 풀려고 애썼다. 그러다 보니 전반적인 한국 문화에서 한을 승화하려는 움직임이 자연스레 포착된다.

특히 민요나 판소리를 살펴보면 한을 푸는 과정에서 익살과 해학이 등장한다. 해한(解恨)의 과정에서 해학을 집어넣었다. 이러한 이유로 서민들의 일상생활이나 민속에서 한과 더불어 해학이 바늘과 실처럼 따라다닌다.

판소리 <심청전> 가운데 심청과 아비의 슬픈 이별 장면에서 뺑덕어미가 익살을 부리고 <흥부전> 중 가난한 흥부 일가를 묘사하는 데 과장과 익살이 곁들여져 있는 등 한과 해학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한은 가슴앓이를 할 정도로 먹먹하기도 하지만 나라의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독립운동, 금모으기 운동 등 민족의 힘을 하나로 묶는 단합의 매개체, 해한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예술로 승화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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