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 한국민속촌)

경천애인·홍익인간 등 교육 통해 정신문화의 맥 이어야
일제강점기·산업화 이후 “나만 잘되면 돼”식 풍조 만연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옛 조상들의 삶 자체는 ‘여유로움’이었다. 감자나 고구마로 끼니를 때울 만큼 배고픈 시절에도 할머니 할아버지 무릎에 누워 이야기를 들었다. 옛 이야기에는 해학적인 교훈이 있었으며,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호랑이는 담뱃대까지 물고 있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여유는 곧 포용력으로 나타났다.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유교나 불교, 도교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전통 사상 속에 녹아들어 조화를 이뤘다. 일찍이 맹자는 불교가 도교와 같다며 배척했으나 삼국시대에 들어온 유불선 사상은 신라의 화랑도와 함께했다. 아울러 근래에 들어온 기독교 역시 한국에 정착하는 것이 다른 나라보다 한결 수월했다. 이를 보더라도 포용력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족의 포용력, 설 자리를 잃어

포용력은 군사정부 이후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남을 이해하기보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점점 확대됐다. 일제강점기 이전만 하더라도 민족은 서로 더부살이하고 존중하며 살았으나 점차 이를 구식으로 여겼다.

한때 효와 예, 상생과 조화 등을 당연히 생각했던 민족은 ‘합리적’이라는 이름 아래 자기 자신만 아는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로 변질됐다. 서구문화가 여과 없이 들어오고 산업화가 급속도로 이뤄지면서 한국 사회는 정체성을 잃고 흔들리고 있다.

더부살이를 하던 민족은 언제부터인지 눈에 핏발을 세우며 바로 옆에 있는 사람조차 돌아보지 못할 정도로 바삐 살아가고 있다. 벌건 대낮에 주먹이 나는 것은 예삿일이 됐으며,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는 패륜 소식까지 접하게 됐다.

한마디로 한국은 도덕 불감증에 걸렸다. 서로에게 ‘누가 더 잘되나 봐라’는 풍조가 만연하면서 고유의 정신을 잃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전체가 자연을 뒤로한 채 문명을 삶의 진화라고 생각해왔다. 이러한 현실에서 서구의 물질문명 대신 동양의 정신문화로 향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의 전통 정신문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늘날뿐 아니라 예부터 한국의 문화가 공공연하게 인정받아 왔다.

◆자연·인간 등 ‘조화’ 중시

공자의 7대손 공빈은 <동이열전>을 통해 동이는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녀, 나라와 나라 간의 도리를 잘 지키는 군자의 나라 즉 ‘동방예의지국’이라 지칭했다. 적어도 일제침략과 산업화가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로 간 존중하는 게 몸에 배였다. 당나라 현종은 ‘신라는 군자의 나라(君子之國)’라고 일컬었다.

육당 최남선 선생은 민족의 기상을 ‘백민(白民)’이라 일컬었다. 이 사상은 순결 평화 정의 청렴 용기와 같은 덕목이 백민정신에서 나왔으며, 곧 ‘경천애인(敬天愛人)’사상으로 발전했다는 게 골자다.

경천애인 사상은 단군의 ‘홍익인간’, 신라의 ‘화랑도’,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정신에 녹아들었다. 이들 사상의 공통점은 다툼보다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도의 지식인 타고르가 한국을 가리켜 ‘동방의 등불’이라 지칭한 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안명회 한국유림총연합 총재는 “요즘 흔히 우리 정신이 ‘변질됐다’ ‘쇠퇴했다’라고 말을 하지만 먼저 어느 시대를 기점으로 어떠한 정신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 해결이 큰 관건”이라며 “전통사상의 틀을 찾으려면 헌법 전문을 바탕으로 역사적인 맥을 세워야 한다. 그러다 보면 단군왕검 시대 즉, 국조의 정신문화 틀을 찾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된장은 된장인데 어머니 손맛을 느낄 수 없다면 우리의 된장이라고 말할 수 없다”면서 “이와 같이 현재 우리도 역시 풍토에 맞는 정신이 무엇인지 그 기준을 찾는 움직임이 조금씩 일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전했다.

◆일제 이후 민족성 변질

35년간 지속된 일제 치하에서 조선인들은 목숨을 부지하느라 바빴다. 먼저 자신부터 살아야만 했던 이 시대 상황 속에서 남을 챙기기가 어려웠다. 더욱이 생면부지에게 관심을 둘 여력은 없었다.

1945년, 한국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해방을 맞았다. 이후 산업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경제가 고도성장되면서 민족의 정신은 낡고 진부한 것으로 치부됐다. 서구화 바람이 불면서 이러한 현상은 심화됐다.

안 총재는 “그렇다고 옛 정신만 중요히 여기는 법고사상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다만 옛 것을 다시 궤도 위에 올려놓으면서 새로운 정신문화를 다문화정신이 공존하는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익할 수 있도록 조화롭게 구성해야 할 것”이라며 “옛 것을 버리지 말고 자양분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신문화를 정립하기 위해 두 가지 기준이 필요하다. 3.1 독립운동의 모태가 됐던 독립정신을 높이고 현재 우리 헌법 전문을 바탕으로 역사의 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 내용이 충족돼야 비로소 전통사상의 틀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안 총재의 설명이다.

그는 “개천절을 국경일로 삼아 해마다 행사를 벌이고 있으나 역사적인 단군왕검 이야기만 있지 당시의 ‘홍익인간’ 등 정신문화를 찾아볼 수 없다”며 “국가가 막대한 예산을 정신문화 연구에 쏟아 부어도 요점을 찾을 수 없다면 밑 없는 독에 물 붓기”라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정신문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학계 측은 ‘교육’이라고 답한다.

안 총재는 “현재 대학 도서관에 가더라도 정신문화에 대한 자료는 많지만 이를 적절하게 종합·취합하거나 선택·정리해 자료화하는 게 부족하다”며 교육을 체계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류는 물질주의가 만연한 삶에 지쳐가고 있다. 그래서 이탈리아 중심으로 ‘느리게 살기’라는 운동이 확산되면서 세계는 이제야 ‘조화롭고 여유로운 삶’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국내 학계는 여기에 한국의 정신문화가 접목된다면 현재보다 안정적이고 발전된 사회로 만들 수 있다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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