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로부터 유래된 근대 5종 전직 국가대표

“중학생 때 말과 하나 되는 ‘인마일체’ 경험”

취약했던 수영 종목, 맹연습 속에 수준 향상

1988서울올림픽 앞두고 부상… 한의사 선택

“꿈은 체육인 복지 위한 ‘체육인 병원’ 설립”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운동선수로서 태극마크를 가슴에 다는 영예는 선수라면 누구나 갖는 꿈일 것이다. 그런데 그 꿈을 이루고난 뒤 은퇴한 후 선수를 가르치는 코치의 길이 아닌 어찌 보면 전혀 달라 보이는 ‘한의사’의 길을 걷는 이가 있다.

바로 ‘근대 5종’ 전(前) 국가대표 선수 서인원 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서 원장은 어떻게 운동선수에서 한의사가 될 수 있었을까? 그는 8일 천지TV 보이는 라디오 ‘운동극장’의 일곱 번째 주인공으로 출연해 자신이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한의사가 되기까지의 삶의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풀어나갔다.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근대 5종이라는 경기는 고대 올림피아대회에서 실시하던 5종 경기, 즉 멀리뛰기·창던지기·200야드경주·원반던지기·레슬링을 현대적으로 본 떠 만든 것이다.

펜싱·수영·승마·크로스컨트리(육상)·사격 등 5개 종목을 하루 또는 2~3일에 진행해 각 종목에서 득점한 점수를 합산해 총점으로 순위를 정한다. 이 경기는 1912년 제5회 올림픽경기대회 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서 원장이 근대 5종을 시작하게 된 것은 승마를 배우면서부터였다. 그는 “중학교 시절, 우연한 기회에 무료로 승마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며 “인마일체(人馬一體, 말과 기수가 하나가 됨)랄까? 뭔가 말과 교감하면서 운동하는 것이 좋았고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고교시절까지 줄곧 승마를 하면서 대회에 나가 입상한 경험도 있다는 서 원장은 “대학 입학을 앞두고 뭔가 색다른 것에 도전하고 싶었다”면서 “당시 근대 5종 선수가 많지 않았고 그래서 특기생으로 지원해 들어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말 다루는 솜씨가 좋았던 그는 승마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키도 큰 편에 속하고 팔도 길었던 그는 ‘찌르기’ 기술을 사용하는 펜싱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고, 사격의 경우 ‘손떨림’이 적어서 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수영’이었다.

서 원장은 “가장 취약했던 종목이 수영이었다. 다른 것은 다 자신이 있었지만 수영은 그렇지 않았다. 연습을 많이 한다고 해도 금방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면서 “수영은 어릴 적부터 배워야 했던 운동이었다는 사실을 정말 많은 물을 먹어가며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

‘근대 5종’ 전(前) 국가대표 선수 서인원 원장(동제한의원 한의사)이 8일 천지TV 보이는 라디오 ‘운동극장’의 일곱 번째 주인공으로 자리해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하고 있다. (출처: 천지TV) ⓒ천지일보 2019.7.8
‘근대 5종’ 전(前) 국가대표 선수 서인원 원장(동제한의원 한의사)이 8일 천지TV 보이는 라디오 ‘운동극장’의 일곱 번째 주인공으로 자리해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하고 있다. (출처: 천지TV) ⓒ천지일보 2019.7.8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날마다 맹연습을 지속, 결국 나중에는 동료선수들과 비슷한 수준에까지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 또한 국가대표가 목표 중 하나였기에 이를 악물고 꾸준히 꿈을 향해 나아갔다.

그는 “운동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며 “무조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그래서 나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다”고 했다.

서 원장이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게 된 것은 대학교 4학년, 군 입대 직전이었다. 그는 “조금 늦게 이뤄지긴 했지만 (국가대표가 된 것은) 진짜 기뻤다”며 “그 만큼 소망이 컸는데 ‘드디어 됐구나’하는 안도감과 함께 즐거움이 넘쳤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그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바로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부상을 당하면서 제대로 된 성적을 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시련은 고통스러웠으나 그에게 또 다른 꿈을 가져다줬다. 서 원장은 운동을 그만두는 대신 운동을 하면서 배운 경험과 지식을 100% 활용해 이제는 말이 아닌 사람을 다루는 한의사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사실 어떻게 보면 서 원장이 한의사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웠던 것일 지도 모른다.

그는 운동을 하면서 그저 반복적인 연습에만 몰두했던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는 운동을 할 수 있을지 늘 고민했다. 그 결과, 자연스레 인체에 대한 지식을 탐구하게 됐다.

1987년 국가대표 시절 추나와 스포츠 마사지 등 자격증을 딸 정도로 그는 인체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오직 스스로 공부했다. 서 원장이 한의사의 길을 걷게 된 또 하나의 배경이 있다면 한의사였던 아버지 곁에서 어릴 적부터 한의학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의사가 되는 길이 쉬웠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학교에서는 매일 같이 시험을 치고 일정 점수에 미달되면 재시험, 그 시험에서도 미달이면 또 시험을 보고 거기서조차 미달일 경우 유급을 시켰다”고 설명했다.

‘근대 5종’ 전(前) 국가대표 선수 서인원 원장(동제한의원 한의사)이 8일 천지TV 보이는 라디오 ‘운동극장’의 일곱 번째 주인공으로 자리해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하고 있다. (출처: 천지TV) ⓒ천지일보 2019.7.8
‘근대 5종’ 전(前) 국가대표 선수 서인원 원장(동제한의원 한의사)이 8일 천지TV 보이는 라디오 ‘운동극장’의 일곱 번째 주인공으로 자리해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하고 있다. (출처: 천지TV) ⓒ천지일보 2019.7.8

어떤 교수는 운동선수였던 그가 한의사가 되겠다고 공부하는 모습을 탐탁찮게 여기며 비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 원장은 그 교수의 비난이 오히려 자신에게 약이 됐다고 했다.

그는 “‘운동하던 녀석이 무슨 공부야’라는 말을 들었다”며 “자존심이 상했지만 오히려 오기가 생겼고 진정한 운동선수가 뭔지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기를 쓰고 공부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땐 정말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일이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좋은 동기부여가 됐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그는 유급 한 번 없이 공부를 마치고, 국가고시에 합격해 한의사가 됐다.

그는 현재 자신의 꿈에 대해 “체육인들, 특히 전직 국가대표 선수들 가운데 생활고를 겪거나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꼈다”면서 “체육인 복지를 고민하던 끝에 내린 결론은 체육인만을 위한 ‘체육인 병원’을 세워야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여러 가지 자료도 살펴보고 노력하고 있지만 장소적인 부분과 비용적인 문제가 있다”면서 “그래도 마음먹고 시작을 했으니 죽을 때까지 시도할 것이다. 언젠가는 꼭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서 원장은 2000~2005년 올림픽한의원 대표원장,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근대5종 주치의, 2010~2016년 대한근대 5종 연맹이사, 2014~2018년 한국도핑방지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동제한의원을 운영하면서 한국실업근대 5종 연맹회장, 대한근대 5종 연맹대의원, 국제문화교류재단(ICCF) 서울동부 지회장, ㈜닥터챔프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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