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기록된다. 역사는 미래를 바라볼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남겨진 유물은 그 당시 상황을 말해 주며 후대에 전해진다. 이 같은 역사적 기록과 유물을 보관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장소가 박물관과 명가이다. 이와 관련, ‘이달에 만나본 박물관·명가(名家)’ 연재 기사를 통해 박물관·명가가 담고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진천 덕산양조장 이방희 대표가 발효되는 술을 젓고 있다. ⓒ천지일보 2019.7.5
진천 덕산양조장 이방희 대표가 발효되는 술을 젓고 있다. ⓒ천지일보 2019.7.5

진천 ‘덕산 양조장’
90년 역사 담긴 근대문화유산
과학적 건물구조로 온도 일정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치익치익, 보글보글.’ 정말 살아있는 걸까. 뽀얀 막걸리가 든 통마다 다양한 소리가 들렸다. 공기 방울을 터뜨리며 발효되고 있는 막걸리는 마치 숨 쉬고 있는 듯 자신의 존재를 알려왔다.

충청북도 진천 덕산양조장 앞. 오래된 건물 외관 한가운데에 목조 현판이 걸려있다. 옛 느낌이 물씬 풍기는 양조장은 분명 다른 건물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만화가 허영만의 ‘식객’과도 연관된 양조장. 식객의 ‘할아버지의 금고’ 편에 나오는 술도가 ‘대왕주조’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여기다. 과연 이곳은 어떤 이야기가 담겼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걸까.

덕산양조장 외관 ⓒ천지일보 2019.7.5
덕산양조장 외관 ⓒ천지일보 2019.7.5

◆건물 원형 그대로 유지

막걸리 하면 보통 부모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노란 주전자에 막걸리를 받아오다가 한 번쯤은 몰래 먹어봤을 법한 추억. 이곳 양조장의 단층 합각함석지붕 목조건축물은 왠지 모르게그때를 상상케 한다. 1930년에 지어진 이래 90여 년간 한 자리에서 술을 빚어왔다.

현재 이곳은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돼있다. 백두산에서 벌목해온 나무를 압록강 제재소에서 다듬어 수로(水路)를 이용해 진천까지 운반해 왔고 그 나무로 양조장을 지었다.

건물은 수수깡을 엮은 뒤 흙을 바르고 나무판을 대어 마무리했다. 흙벽과 나무판 사이에 왕겨(벼의 겉껍질)를 채워 넣었다. 놀라운 것은 현재까지 건물 원형이 잘 유지돼 있어 근대문화유산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양조장 앞에는 벌레를 쫓는 데 특효가 있는 측백나무와 향나무가 심겨있다. 선조들의 지혜가 가득 담긴 건축방식이었다.

현재 양조장은 이방희 대표가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이곳 양조장은 3대째 가업을 이어 전통주를 생산한 곳이다. 그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이 대표는 “한국전쟁 당시 양조장이 국방군 진지로 사용했는데 군인들이 철수하면서 이곳에 불을 지르려고 했다”며 “그때 어르신(1대 창업주)이 돈 45원과 장작 두 트럭, 소 한 마리를 주면서 인민군이 기지로 쓰면 자신이 불태우겠다고 약속하고 군인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1970년대 이후 탁주가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1990년부터 10년간 폐쇄된 적도 있었다. 3대 이규행 사장이 2000년대 들어다시 이곳에서 탁주와 약주를 생산하기 시작했으나 또다시 경영위기가 왔다. 이후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뀌면서 이 대표가 인수하게 됐다.

막걸리를 떠오르게 하는 노란 주전자 ⓒ천지일보 2019.7.5
막걸리를 떠오르게 하는 노란 주전자 ⓒ천지일보 2019.7.5

◆부드러운 술맛에 반해

특히 이곳 진천군 덕산면은 전통 명주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고장이다. 전국적으로 많은 양조장이 있지만 덕산양조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술을 만들던 전통방식을 그대로 고수한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전쟁 당시나 술을 만들지 못하던 시절에도 주모(酒母·밑술) 독은지켜냈다. 주모는 술의 모주와 같은 것으로, 감초역할을 해준다”고 말했다. 이어 “양조장 곳곳에 균들이 있다 보니 발효제를 넣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술이 빚어져 부드러운 맛을 내는 것도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생거진천이라는 말이 있듯 진천은 물좋고 살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수확한 쌀은 막걸리의 맛을 더욱 일품으로 만든다고 한다. 사진은 벼가 푸릇하게 자라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 2019.7.5
생거진천이라는 말이 있듯 진천은 물좋고 살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수확한 쌀은 막걸리의 맛을 더욱 일품으로 만든다고 한다. 사진은 벼가 푸릇하게 자라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 2019.7.5

특히 천장에 왕겨가 1m가량 있어 습도와 온도도 자연적으로 조절해주고 있다. 양조장 문의 서쪽에 냇가가 흐르는데, 바람이 건물 안으로 들어와 지붕의 통풍 굴뚝을 통해 다시 벽을 치고 내려온다. 과학적인 건물 구조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 막걸리 발효를 돕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전통을 지키는 덕산양조장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바랐다.

이 대표는 “막걸리를 지키려 했던 옛 어르신들의 마음을 젊은이들이 이해해주길 바란다”며 “천년을 이어갈 수 있도록 국가에서도 관심을 갖고 양조장을 지켜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는 말이 있듯, 진천은 쌀 좋고 물 좋은 고장”이라며 “막걸리는 나와 우리의 삶과 추억”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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