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과정에서 여야 의원이 충돌하며 벌어진 폭력사태는 한국정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국회 폭력을 막기 위해 만든 그 법마저 폭력사태로 만신창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그들이 만든 패스트트랙을 온몸으로 막으며 보좌진들까지 동원해 국회를 폭력의 장으로 만드는데 앞장섰다. 일부 의원들은 한 야당 의원의 국회 사무실까지 봉쇄해 사실상 감금하는 사태도 빚어졌다. 부끄러움을 넘어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

이른바 ‘동물국회’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패스트트랙 제도는 그 자체가 결코 만능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름 그대로 일정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차선책에 다름 아니다. 발동 요건을 까다롭게 만든 것도 가능하면 패스트트랙 보다 여야 ‘합의’로 법률안을 심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 때문이다. 그럼에도 도저히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폭력으로 밀어붙이거나 폭력으로 회의장을 점거하는 일만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여론을 수용해 패스트트랙 제도를 보완장치로 마련한 것이다. 처벌규정까지 만들어 비교적 엄격하게 규정한 것도 이런 배경이었다.

이렇게 마련된 패스트트랙 제도까지 폭력으로 좌초된다면 이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민주주의와 국민에 대한 배신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가 시정잡배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래서 이번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한 국회의원들의 경우 일벌백계로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이다. 다행히 지난달 말 국회 폭력사태에 대한 경찰 수사가 본격화 되었다. 향후 이어질 검찰 수사 및 재판에서도 의회 민주주의를 사수한다는 각오로 냉철한 사법적 판단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경찰 수사에 대해 “표적 소환에 응할 수 없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폭력을 행사한 국회의원들에 대한 소환이 표적 수사라면 아예 수사를 하지 말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궤변을 넘어 억지에 가깝다. 게다가 이번에는 한 술 더 떠서 경찰 수사에 외압을 가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경찰 수사를 받게 될 동료 의원들에 대한 수사 진행 상황과 수사 담당자, 수사 대상 명단까지 제출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국회의원의 ‘갑질’이며 ‘외압’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자유한국당도 얼마 후에 공천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그 때까지 계속 오만한 태도로 국민과 싸울 것인지 스스로 답해야 한다. 국민이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음을 직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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