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일본 아베 정부가 또 한국에 대한 공세를 폈다.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을 때리며 국내 지지율을 끌어 올렸던 그였지만 이번에도 그 술책이 통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누구든 코너에 몰리면 악수(惡手)를 두기 십상이고 자칫 그 악수를 정당화 하려다가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핵심은 명분과 실리가 있는가에 달려 있다.

아베 정부가 내린 이번 조치의 골자는 TV와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에 쓰이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제조과정 필수품목인 리지스트와 에칭가스 등 3개 소재를 4일부터 ‘포괄적 수출허가’ 대상에서 제외해 ‘개별적 수출허가’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해당 품목을 한국으로 수출할 때 일본 당국의 심사와 허가를 받으라는 얘기다. 그리고 8월부터는 한국 수출품에 대한 일본 당국의 심사 및 허가 대상 품목을 더 확대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아베 정부의 이번 수출규제 조치는 한국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판결을 내린 데 대한 보복 차원으로 보인다. TV와 스마트폰 시장 최강국인 한국을 향해 콕 찍어서 그 심장을 찌른 셈이다. 일본은 그동안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피해자 등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나 피해보상에 적극 나선 적이 없다. 그런 사실도 없거니와 보상 청구권도 벌써 끝났다는 식이다. 역사 왜곡을 넘어 아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식이다.

열 번을 양보해서 한국 대법원 판결에 불만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문제와 주요 제품을 한국에 수출하는 문제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정치 현안에 대한 분풀이로 시장경제와 공정무역의 원칙까지 흔들겠다는 것인가. 그리고 이런 저급한 조치가 아베 총리에 대한 지지율을 끌어 올린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다. 도대체 일본은 어떤 나라이며, 일본 국민은 어떤 사람들인지 묻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베의 터무니없는 이런 보복조치에 과연 일본 국민들이 얼마나 박수를 보낼까. 참으로 궁금한 대목이다.

일본 아사히 신문도 3일자 논설에서 무역관계를 정치에 이용했다고 지적하면서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직전에 있었던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일본은 의장 국가로서 ‘자유롭고 공평한 무역’을 선언했는데 이런 합의조차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라고 아베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베 정부는 보복조치가 아니라 안전조치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일본이 그런 나라다.

일본 아베 정부의 이번 수출규제 조치가 사실상 한일 양국 간에 벌어지고 있는 낮은 단계의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을 보여 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중국에 밀려난 일본이 다시 한국에도 따라 잡히자 그 두려움이 극대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일리 있는 얘기이긴 하지만 이번 아베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의 직접적 배경은 오는 21일로 다가온 참의원 선거로 보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자칫 개헌선인 3분의 2이상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개헌 논의가 무력화 될 수 있다는 데 대한 위기감의 산물이다.

아베 외교의 특징은 ‘트럼프의 푸들’로 압축된다. 이번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도 그랬다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한다는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무역으로 부를 일군 일본으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대목이다. 게다가 러시아와의 북방영토 문제에서도 별 성과가 없다. 한국에게는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분쟁에서 패소했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다. 아베에 대한 지지율이 오를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헌법 9조를 바꿔야 할 타이밍이 다가왔으며 그 시험대가 오는 21일의 참의원 선거에 달려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아베 입장에서는 일본 국민의 시선을 사로잡을 뭔가 강력한 조치가 필요했으며, 그 수단으로 한국에 결정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예리한 무기 3개’를 골라서 한국을 때린 것이다.

물론 한국에겐 많이 아프다. 일본의 공세로 상처가 더 커질 수도 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리지스트는 일본이 세계 시장의 90%, 에칭가스는 70%를 점유하고 있다. 한국에겐 당장 다른 대안이 많지 않다는 것이 뼈아픈 대목이다. 게다가 경제성장률이 계속 추락하는 한국경제에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수도 있다. 아마 아베는 그 점을 노렸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예전의 그 한국이 아니다. 아베의 술책과 정략에 호락호락 넘어갈 그런 나라가 아니라는 얘기다. 당장 한국 정부는 WTO(세계 무역기구)에 제소 입장을 밝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칙대로 가겠다는 의지다. 민간 부문에서는 일본과 일본 제품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세계 3대 경제대국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기회다. 여기에 더해서 우리 정부는 반도체 핵심 소재와 부품 및 장비 개발에 내년부터 매년 1조원씩을 집중적으로 투자키로 했다. 그리고 기간산업의 필수적인 소재와 부품 등에 대한 수입 다변화를 통해 탈일본화 속도도 내겠다고 밝혔다.

물론 우리 정부가 뒤늦게 허둥대는 모습은 그다지 곱지만은 않다. 일본의 저급한 술책을 지금껏 몰랐느냐고 묻고 싶다.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의 기술을 보고만 있었느냐는 것이다. 국내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이 20%에 불과하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정부가 최근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및 전략’을 발표했다. 딱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요란하지 않게 그러나 치밀하고도 일관되게 ‘제조업 세계 4강’의 비전을 차근차근 일궈나가야 한다. 정치권도 딴 목소리는 자제해야 한다. 여기서 무너지면 자칫 다 무너질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부디 위기 때 더 강해지는 대한민국의 참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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