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량 작가

엄청나게 추운 2010년 연말이었다. 프랑스에서 온 지 16년을 채워가고 있건만, 이렇게 추운 겨울은 처음이다. 영하 10도를 오르락거린다 하고, 150년 만에 몰아닥친 한파라고 하였다. 프랑스의 겨울은 체감온도보다 더 춥다. 저온다습한 기후에 북유럽에서 내려온 차가운 바람까지 더하면 혈관까지 추위가 파고드는 느낌이다.

이런 추위에 익숙하지 못한 파리지앵들은 지난 12월 8일 폭설을 맞으면서 교통대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프랑스의 겨울은 한국의 맵싸한 추위와는 거리가 멀다. 하여 내복은 물론이고 두툼한 외투가 필요 없었다. 어떤 겨울은 영상 10도 안팎이라 난방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적도 있다. 올 겨울처럼 한파가 몰아닥치면 난방을 한 따뜻한 공간을 소유하고 있는 것도 축복처럼 여겨진다. 한파를 이기지 못한 노숙인들의 동사 현상이 자주 뉴스에 등장하기도 한다.

파리를 방문한 사람들이라면 파리의 노숙인들을 한 번쯤은 관찰했을 것이다. 그들은 마냥 길목에 죽치고 앉아있거나 아예 길바닥에 드러누워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에서처럼, 대부분이 술병을 끼고 사는 이 노숙인들은 하우스 푸어도 되지 못한 저연금자이거나 삶을 등진 낙오자, 혹은 사회 시스템에 적응하길 거부한 반사회적인 인물 등, 연령층을 비롯 거리에 나선 동기 또한 다양하다. 때로 역 근처에서는 가출 청소년들도 눈에 띈다.

10년 전 결혼하면서 지금 살고 있는 파리 10구역에 정착했을 때, 우리 부부와 거의 동시에 이 동네에 등장한 젊은 남자가 있었다. 처음 우리 부부는 그가 거리 노숙인이라는 것을 쉽게 눈치채지 못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샐러리맨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점차 노숙인으로 변해갔다. 그는 한참 나이였고, 사무실에서 일하다 나온 듯한 말쑥한 양복차림에 항상 수퍼마켓 옆 골목 구석의 계단에 앉아 르몽드 신문이나 책을 읽었다. 복장도 그러했지만, 허우대도 말짱한 젊은이였다. 그의 말쑥한 양복도 시간이 흐르면서 꾀죄죄해갔고, 나중에는 그의 말끔하고 준수한 외모도 덥수룩한 수염으로 덮혔다. 그래도 그는 늘 같은 장소에서 책을 읽었다. 겨울이 오자, 그도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해 봄 그는 다시 나타났다.

그러기를 반복한 몇 년이 흐른 뒤 수퍼 옆 그 골목길에서 만난 그의 모습에 나는 그만 충격을 받고 말았다. 땟국물이 흐르는 스웨터차림에 얼굴은 흡사 원시인을 연상시킬 정도로 머리카락과 수염이 범벅되었고 피부는 붉게 뭉개졌으며, 등도 구부러졌다. 분명 예전의 그 말짱한 청년인 것 같은데 몇 년 사이 몇십 년은 늙어버린 것이다. 거리 생활이 그를 그렇게 짓밟아 놓은 것일까? 내 시선을 수습할 겨를도 없이 나의 충격은 그대로 그에게 전달되었고, 그는 내게 시커멓게 때가 절은 손을 내밀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웅얼거렸다. 익숙하지 않는 손짓임이 금방 느껴졌다. 나는 지갑을 뒤져 동전 몇 푼을 얹어줄 수밖에 없었다. 동네 독거노인들이 그를 챙겨주는 모습이 종종 보였으며 중국인 아저씨가 운영하는 채소가게에서 짐을 나르기도 하였다. 그렇게 그는 아직도 우리 동네서 살아가고 있다.

겨울이면 파리 지하철에서도 노숙인들의 구걸행위도 늘어난다. 어떤 날은 서너 명의 구걸인을 만나기도 하며 방금 적선을 하였는데 또 구걸하는 사람이 올라탈 경우에는 난처하기까지 하다. 약물 중독자에게는 적선을 피해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해서 적선도 이제 구걸인의 관상을 보고 하게 되었다. 멀쩡한 신발에 눈빛이 흐리면 약물 중독자일 확률이 높고, 일부러 아이들을 이용해 적선하는(주로 집시 난민들, 프랑스 노숙인은 절대 아이들을 대동하지 않는다) 경우에는 그 치졸함에 화가 난다. 연말이면 파리의 지하철을 회피하고 싶기까지 한데, 그건 내 주머니를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 화려한 도시에서 빈곤한 사람들을 내버려 두고 있는 현실이 나를 심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리에서는 노숙자들이 거리 생활을 선택하는 것도 일종의 권리라고 여긴다. 파리에는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노숙자들은 거리를 선택하는 편이다. 그네들이 거리를 선택한 것은 무엇보다 거리의 자유에 더 집착하기 때문이다. 한파가 몰아치면 자선단체와 응급실 요원들은 거리에 너부러져있는 노숙인들을 따뜻한 실내로 ‘모시기 위하여’ 출동한다. 그리고 그네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며 한파의 거리에서 빼내기 위한 설득작전이 시작된다. 이렇게 하여 순순히 자발적으로 거리를 떠나는 사람은 오히려 드물다고 한다. ‘내가 얼어 죽든지 말든지 내버려둬!’라고 빽 소리를 치는 사람도 있는데 노숙인 전용 시설에 가지 않는 이유는 도둑이 많을 뿐 아니라 흡사 정신병원을 연상시키는 분위기 때문이라고. 봉사요원이나 경찰이 노숙인들을 억지로 데려가는 경우는 거의 생기지 않는다.

내가 만난 어떤 독일 친구는 파리시에서 노숙자들을 거리에 내버려두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물론 노숙인들은 한국에서도, 독일에서도 세계 어느 대도시에서 쉽게 발견된다. 그러나 유독 파리의 노숙인들이 유명한 까닭은, 거리에 머물기를 더 선호하는 노숙인들의 의견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미관을 해치고 불쾌감을 조성한다고 하여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가치관에서마저 소외당할 이유는 없다. 그것이 프랑스이고, 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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