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역사문화 여행⑫] ‘종묘’ 조선시대 왕과 왕비 넋 기리다
[지하철 역사문화 여행⑫] ‘종묘’ 조선시대 왕과 왕비 넋 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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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주요 교통수단인 지하철. 그 노선을 따라가 보면 곳곳에 역사가 숨어있다. 조선의 궁궐은 경복궁역을 중심으로 주위에 퍼져있고, 한양의 시장 모습은 종로를 거닐며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지하철역은 역사의 교차로가 되고, 깊은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와 관련, 켜켜이 쌓여있는 선조들의 발자취를 지하철 노선별로 떠나볼 수 있도록 역사 여행지를 내·외국인에게 소개해 보고자 한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묘 정전에서 봉행된 2019년 종묘대제에서 무용수들이 일무를 추고 있다. 종묘대제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진 종묘 정전과 영녕전에서 왕이 직접 거행하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길례(吉禮)에 속하는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제사다.ⓒ천지일보 2019.5.5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묘 정전에서 봉행된 2019년 종묘대제에서 무용수들이 일무를 추고 있다. 종묘대제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진 종묘 정전과 영녕전에서 왕이 직접 거행하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길례(吉禮)에 속하는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제사다.ⓒ천지일보 2019.5.5

지하철 1,3,5호선 종로3가역
역대 왕·왕비 위패 모시는 곳
삼로, 혼령·왕·세자 다니는 길
정전, 국내 목조 건물 중 으뜸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전하! 어찌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을 버리려 하시나이까.”

사극을 보면 자주 등장하는 말이 바로 ‘종묘사직’이다. 종묘는 유교를 지배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곳이다. 사직은 백성의 복을 비는 국토의 신(神)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을 일컫는말이다. 보통 종묘와 사직이 없어지는 것은 나라가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임금이 실정을 한다 싶을 때 신하들도 이처럼 표현했다. 그만큼 종묘와 사직을 지키는 것은 조선시대에 매우 중요했다.

◆유교 이념 잘 담긴 장소

서울 1호선 종로3가역 11번 출구에서나오면 종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저멀리 보이는 웅장한 건물. 붉은 색이 눈에 확 들어온다. 분명 조선 궁궐과는 다른 느낌이다. 건물 주변은 유난히 엄숙했다. 518년 조선왕조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다.

이곳은 궁궐을 돌아보다가 조금은 다른 느낌을 만나고 싶은 방문객에게는 추천하는 장소다. 종묘는 태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정한 후 경복궁보다 먼저 건립된 곳이기도 하다. 유교 경전인 ‘주례(周禮)’에 보면, ‘궁궐의 왼쪽엔 종묘를, 오른쪽엔 사직단을 두어야 한다’고 돼 있다.

태조 4년(1395) 건립된 종묘는 유교를 지배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곳이다. 사후에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도 봉안하고 제사도 받들었다.

유교 예법에 보면 국가의 도읍에는 세 곳의 공간이 필요했다. 왕이 머무르는 공간,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종묘, 그리고 신에게 제사 지내는 곳이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묘 정전에서 2019년 종묘대제가 봉행되고 있다. 종묘대제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진 종묘 정전과 영녕전에서 왕이 직접 거행하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길례(吉禮)에 속하는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제사다.ⓒ천지일보 2019.5.5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묘 정전에서 2019년 종묘대제가 봉행되고 있다. 종묘대제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진 종묘 정전과 영녕전에서 왕이 직접 거행하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길례(吉禮)에 속하는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제사다.ⓒ천지일보 2019.5.5

◆신주 총 49위 모셔져

종묘의 입장 방식은 다른 궁궐과 달리 조금 통제돼있다. 선조들이 지켜온 문화재를 보존해야하기에 입장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만큼 이곳은 훼손 되서는 안 되는 장소라는 것이다.

종묘의 정문인 외대문(外大門, 창엽문)을 지나 발걸음을 내디디면 길이 곧게 뻗어 있다. ‘누가 이 길을 걸었을까’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저 멀리보이는 건물들로 궁금증이 커진다. 오른쪽에 있는 하나의 작은 연못이 잠시 궁금증을 식혔다.

외대문에 들어서서 만나는 길은 모양이 좀 특이하다. 세 개로 나뉜 길인 ‘삼로(三路)’다. 그런데 가운데 길은 양쪽 길보다 조금 높다. 바로 조상의 혼령이 다니는 ‘신로(神路)’다. 신로의 오른쪽은 왕이 다니는 ‘어로’, 왼쪽은 세자가 다니는 ‘세자로’다. 임금도 신 앞에서는 제사를 맡는 제관의 역할을 했다.

종묘 정전 ⓒ천지일보DB
종묘 정전 ⓒ천지일보DB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목욕재계를 하고 제례를 준비하던 어숙실이 나온다. 이어 종묘의 중심 건물인 정전(국보 제 227호)이 눈에 들어온다. 궁궐에서는 볼 수 없는 긴 건물로 우리나라 목조 건물 중 으뜸이다. 이곳에는 태조를 비롯해 공덕이 있는 왕과 왕비의 신주 등 총 49위가 모셔져 있다. 그 위엄에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의 입은 그야말로 ‘딱’ 벌어진다. 길게 이어진 건물을 눈앞에서 보고 있으면, ‘어떻게 지었을까’할 정도로 그 정교함에 반하게 된다.

정전 왼편에는 영녕전(보물 제821호)이 있다. 이곳은 신위 수가 늘어나면서 새롭게 지어진 별묘다. 폐위되었다가 숙종 때 복위된 단종의 신위는 이곳에 있으나, 폐위된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위는 정전과 영녕전에서 모두 제외된 상태다.

원래 종묘는 창덕궁, 창경궁과 연결된 궁궐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창경궁과 종묘 사이에 도로를 놓으면서 영역이 갈라져 오늘날의 형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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