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 십자가. (사진출처: 뉴시스)
명동성당 십자가. (사진출처: 뉴시스)

“신을 믿는다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차별과 증오”
“코란에 ‘신을 안 믿는 자들과는 싸우라’는 구절
안 믿는 사람은 개종시키라는 의미·폭력도 허용”
정치종교학자 “정치·사회적 혼란으로 종교 거부”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인구의 90%가 이슬람 신자인 이집트에서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젊은 무신론자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에서 시작된 혼란이 초래한 새로운 시류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이집트에서 무신론을 주장하는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고 26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집트 동부 도시 후루하다의 한 찻집에서 이 신문 기자와 만난 아흐메드 할칸(36)은 “이슬람교는 내 감각에 맞지 않는다고 느껴 믿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종교를 믿지 않은 이유를 묻자 할칸은 초등학생이던 1993년 엄한 아버지와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의 성지 메카로 이주했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이슬람교의 경전 ‘코란’을 암기했다.

그는 ‘신의 말이 실현된 사회야말로 이상향’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5년 후 코란에 나오는 ‘신을 믿지 않는 자들과 싸우라’는 구절에 의문을 느꼈다고 한다. “이는 믿지 않는 사람을 개종시키라는 의미이며 이때는 폭력도 허용된다”는 선생님의 설명에 그는 “종교가 오히려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에 그는 귀국 후인 2010년 6월 신앙을 버렸다.

이처럼 이집트에는 전부터 지식인을 중심으로 무신론자가 있었지만, 최근 몇 년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두드러지게 무신론자가 늘고 있다.

정치종교학자인 사랄딘 핫산(39)은 대규모 시위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독재정권이 무너진 2011년 이후 이어진 정치, 사회적 혼란이 젊은이들이 종교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이슬람의 가르침에 입각한 정치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2012년 ‘무슬림형제단’ 출신의 무르시가 대통령으로 당선했지만, 자신의 권한을 강화하거나 형제단 회원을 요직에 등용하는 바람에 대규모 시위사태가 재발했다.

핫산은 “형제단의 독선적인 태도를 본 젊은이들이 ‘이게 이슬람이라면 그따위는 필요 없다’고 분개하며 종교에 의지하기는커녕 거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무르시는 2013년 세속파 군부에 구속돼 재판을 받다 지난 17일 법정에서 쓰러져 사망했다. 무슬림형제단은 현재 군이 주도하는 시시정권의 탄압을 받고 있다.

이에 핫산은 “신앙심 깊은 젊은이들도 신은 만능이 아니라는데 실망했다”며 “죄 없는 사람들을 살해한 이슬람국가(IS)의 대두도 종교에 대해 의문을 품게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비영리단체 ‘국제무신론연맹’에 등록된 이집트인은 2868명으로 이 중 93%가 대졸 이상의 학력자다. 고학력일수록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걸 보여주는 통계다.

카이로에 있는 이슬람 수니파 최고 권위의 교육기관인 아즈하르는 무신론 확산에 대처하기 위해 지난 3월 인터넷과 전화로 종교 상담을 받는 전문 팀을 발족시켰다. 하루 50여건 정도의 상담이 들어온다고 한다.

이슬람의 가르침에 따르면 종교를 버리면 사형이다. 이집트 형법에는 이 규정이 없지만 종교 모욕죄로 최고 5년의 금고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터부를 깬 이집트인의 투고에는 “신을 믿는다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차별과 증오가 있거나, 코란에는 과학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 있다”며 무신론자가 된 이유를 설명하는 글들이 많다.

이집트 인구는 약 1억명이다. 무신론자에 관한 통계는 없지만 권위 있는 파트와(이슬람법의 해석·적용에 대해 권위 있는 법학자가 내리는 의견)를 내놓는 역할을 하는 이슬람 최고 법관을 지낸 알리 고마아는 2014년 9월 “6000명의 젊은이를 조사한 결과 12.5%가 무신론자였다”고 밝혔다. 이집트 주재 미국대사관이 작년 5월에 발표한 보고서는 무신론자를 100만~1000만명 사이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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