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천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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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철주금, 1인당 1억원 배상”

2심까지 6년… 원고 모두 별세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1940년대 강제 징용돼 노역에 시달린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또 다시 승소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모두 숨지면서 그 누구도 직접 듣지 못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13부(김용빈 부장판사)는 곽모씨 등 7명이 일본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신일철주금이 1인당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1심과 같은 금액이다.

곽씨 등 이 사건의 원고들은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1942~1945년 신일철주금의 전신인 국책 군수업체 일본제철의 가마이시제철소(이와테현)와 야하타제철소(후쿠오카현) 등에 강제 동원된 피해자들이다. 이들은 동원에 응하지 않으면 가족들을 파출소로 데려가 무릎 꿇리는 등 강압에 의해 강제 노동을 하게 됐다.

앞서 지난해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신일철주금이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고 원심판결을 확정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번 소송과 대상·취지가 같다. 먼저 진행된 이 소송에 대해 2012년 대법원이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다른 피해자들도 용기를 갖고 2013년 소송을 냈다. 이에 따라 첫 소송과 구분하기 위해 ‘2차 소송’이라고 부른다.

1심은 “신일철주금이 1억원씩을 배상하라”고 곽씨 등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항소심 재판부는 앞선 1차 소송의 재상고심 결론이 나올 때까지 판결을 보류했다. 문제는 여기 있었다. 1차 소송의 확정판결이 차일피일 미뤄진 것이다. 이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해당 소송 등을 정부와의 거래 수단으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전말은 ‘사법농단’ 수사가 이뤄져서야 세상에 드러났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승소 판결을 받고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30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승소 판결을 받고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30

결국 1차 소송은 제기된 지 13년 8개월 만인 지난해 10월에야 확정판결이 나왔다. 원고 중 유일하게 이춘식(95)씨만이 살아서 선고를 들었다. 소송을 시작한 지 6년이 된 이번 2차 소송은 항소심 판결조차 어떤 원고도 듣지 못했다. 올해 2월 15일 원고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던 이상주씨마저 세상을 떴다. 이날 재판부는 선고를 앞두고 7명의 원고 이름을 불렀지만, 어떤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원고들의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재성 변호사는 “신일철주금을 방문해 협상 요구를 했던 올해 2월 15일에 유일하게 생존하셨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이미 대법원 판결이 있음에도 이유도 없이 재판이 늘어졌다”고 꼬집었다.

이어 “재판이 늘어지지 않았다면 젊은 날 당했던 피해에 대해 뒤늦게나마 만족해하시면서 여생을 살지 않았을까 싶다”고 안타까워했다.

임 변호사는 “소송은 개별적인 피해자들의 권리회복 절차이고, 신일철주금이 어떻게 반성하는지는 법원 판결로 받을 수 없다”며 “소송이라는 사법에 의한 해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죄명령 등 후속조치는 법률이나 외교, 정치에 의해서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법률적 어려움 때문에 부득이하게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전쟁을 일으키고 총동원체제를 만든 일본정부도 (일본기업과) 공범관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할 제1책임자는 일본정부와 일본국가에 있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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