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사도 왕윤과 초선은 연환계를 써서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시켜 두 사람을 죽일 결심을 하게 됐다. 왕윤은 여포에게 선물을 보냈고 그 답례로 여포가 찾아오자 진수성찬의 주안상이 차려졌고 초선이 불리어 나왔다. 과히 경국지색의 미인이 나타나자 여포는 눈이 황홀해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이 아씨는 누구십니까?”

여포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이같이 물었다.

“내 딸 초선이외다. 내가 항상 장군의 경대를 받아서 한 집안이나 다름없이 지내는지라 장군과 서로 인사나 해두라고 해서 나오라 한 것입니다.”

왕윤은 말을 마치자 초선에게 분부를 내렸다.

“초선아, 이 어른을 뵈옵고 술을 한 잔 따라 올려라. 천하 영웅인 여포 장군이시다.”

초선은 부끄러운 듯 아미를 숙인 채 곱게 일어나 여포를 향해 절을 올린 후에 이내 옥 같은 흰 손으로 황금 술잔을 잡고 호박빛 좋은 술을 남실남실 따라서 여포에게 두 손으로 바쳤다.

여포의 눈과 초선의 눈이 마주쳤다. 여포의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빛 같고 초선의 눈은 그믐달마냥 요염하고 싸늘했다.

왕윤은 그 틈을 타 거짓으로 취한 척했다.

“어허, 술이 취하는군. 늙으면 만사가 소용없단 말야. 이제는 술도 흠뻑 마시지 못하니 딱한 일이야. 아기는 장군을 모시고 한 번 취토록 마셔 보아라. 우리 집은 장군님의 두호(斗護)를 받고 있으니 뭐가 걱정이냐.”

초선은 그때까지도 자리에 앉지 않고 서서 술을 따르고 있었다.

“여기 앉아서 술을 따르시오.”

여포는 자기 옆자리를 가리키면서 초선에게 앉기를 청했다. 초선은 여포가 가리키는 자리를 본 체 만 체 슬며시 몸을 피해 안으로 들어가려고 몸을 돌렸다. 그 모양을 본 왕윤이 초선에게 타일렀다.

“장군은 나의 지극히 친한 벗이다. 장군 옆에 앉아도 무방하다. 말씀대로 옆 자리에 앉아라.”

초선은 그제야 치마를 휩싸 안아 여포의 옆에 곱게 앉았다. 초선의 몸에서 나는 향훈은 더한층 코에 스며들고 선녀 같이 아름다운 자태는 여포의 넋을 사르고야 말았다. 초선은 한 잔 두 잔, 또 한 잔 두 잔 여포에게 술을 권했다.

여포의 이글대며 타오르는 눈은 촌시도 초선한테서 떠나지를 못했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떠날 수가 없었다. 마음이 들썩거리고 설레었다. 술기운이 점점 더 짙어질수록 여포는 초선의 옥 같은 흰 손을 잡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앞에는 왕윤이 앉아 있어 차마 손을 잡지 못했다.

여포가 초선을 바라보며 한참 열이 올랐을 때 왕윤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내 딸 초선을 장군에게 첩으로 바칠 테니 장군의 의향이 어떠하시오.”

여포는 자기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기가 막히도록 좋은 말이었다.

“네? 네? 무어라고 하셨습니까?”

사람이란 하도 좋은 말을 들어도 당황하는 법이다.

“내 딸을 장군에게 보내서 첩으로 드리고 싶은데, 받으시겠느냐 그 말씀이오.”

여포는 입이 귀밑까지 찢어졌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왕윤에게 너부적 절을 했다. 만약 그 같이 해 준다면 왕윤에게 견마의 충정을 다하겠다고 조아렸다.

“좋은 날을 택일해서 초선을 장군의 부중으로 보내드리오리다.”

왕윤의 말에 여포는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었다. 무한으로 기쁠 뿐이었다. 자꾸자꾸 초선만 바라보았다.

초선도 붉은 입술에 미소를 머금고 자주 추파를 흘려 정을 보냈다. 여포의 삼혼칠백(三魂七魄)은 초선의 어여쁜 추파 속으로 녹아들었다.

밤이 이슥했다. 여포는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여포는 차마 자리를 떠나기가 싫었으나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왕윤은 여포의 등을 툭툭 두드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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