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6.25전쟁 69주년을 맞은 가운데 ‘호국보훈의 달’ 6월 박기병(88) 6.25참전언론인회 회장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6.25전쟁 69주년을 맞은 가운데 ‘호국보훈의 달’ 6월 박기병(88) 6.25참전언론인회 회장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참혹한 ‘민족상잔의 비극’ 목격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지킨다”

“우리나라의 안보의식도 문제”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전투라는 것이 사생을 넘나드는 것입니다. 그러한 전투 속에서 드는 생각은 ‘하루 속히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와야 한다’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6.25전쟁 69주년을 맞은 가운데 ‘호국보훈의 달’ 6월 박기병(88) 6.25참전언론인회 회장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전시를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박 회장은 춘천사범학교(현 춘천교대) 재학 중 전쟁이 발발하자 19세의 나이로 학도병으로 입대, 4년 가까이 군복무를 했다. 전쟁의 참혹함과 ‘민족상잔(民族相殘)의 비극’을 두 눈으로 목격한 그는 이 같은 비극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 우리의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6.25전쟁에 대해 “중공군하고도 전쟁을 했지만 같은 동족끼리 전쟁을 했으니 얼마나 비참한가”라고 반문하며 “38도선이 나눠지게 된 것도 우리 자의로 된 것이 아니라 외세에 의해서 강제로 된 것이 아니냐”고 안타까워했다.

또 박 회장은 “북에 살았다는 이유로 또는 남에 살았다는 이유로 양쪽 (청년들) 모두 전쟁에 본이 아니게 동원됐다”며 “연합군들도 자신들의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목숨을 잃었다. 왜 죽어야 했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6.25전쟁 69주년을 맞은 가운데 ‘호국보훈의 달’ 6월 박기병(88) 6.25참전언론인회 회장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6.25전쟁 69주년을 맞은 가운데 ‘호국보훈의 달’ 6월 박기병(88) 6.25참전언론인회 회장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그는 “이러한 역사를 알아야 함에도 요즘 젊은이들은 역사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며 “6.25때 우리나라를 어떻게 지켜냈는지도 알지 못한 채 어떤 이들은 ‘미군 철수’를 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지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또한 “우리나라의 안보의식도 문제”라며 “치우침이 없어야 하는데 지금은 너무 치우쳤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한편 그는 6.25때 희생된 전우들의 몫까지 다해 살면서 남을 위해 봉사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있다고 했다.

그는 강원도 인제에서 전투할 당시 고지에 경계를 서기 위해 올라가야 했는데 ‘학질’이라고 불리는 말라리아 병에 걸려 온몸에서 열이 나고 힘이 없는 상태였다. 그때 후배가 자신을 대신해서 고지에 올라갔는데 중공군에게 포위돼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고 했다.

박 회장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면서 “희생된 전우들을 생각하며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자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말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6.25전쟁 69주년을 맞은 가운데 ‘호국보훈의 달’ 6월 박기병(88) 6.25참전언론인회 회장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6.25전쟁 69주년을 맞은 가운데 ‘호국보훈의 달’ 6월 박기병(88) 6.25참전언론인회 회장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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