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주요 교통수단인 지하철. 그 노선을 따라가 보면 곳곳에 역사가 숨어있다. 조선의 궁궐은 경복궁역을 중심으로 주위에 퍼져있고, 한양의 시장 모습은 종로를 거닐며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지하철역은 역사의 교차로가 되고, 깊은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와 관련, 켜켜이 쌓여있는 선조들의 발자취를 지하철 노선별로 떠나볼 수 있도록 역사 여행지를 내·외국인에게 소개해 보고자 한다

전통 한옥을 느낄 수 있는 빛바랜 기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천지일보 2019.6.24
전통 한옥을 느낄 수 있는 빛바랜 기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천지일보 2019.6.24

3호선 안국역 
한양 중심, 배산임수 명당
경관·경치 빼어난 8경 유명

권문세가 모여살던 귀족촌
반대편엔 남산골샌님들 거주

1999년 가꾸기 정책 수립
개발규제·한옥보존구역으로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빛바랜 기와들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굽이굽이 골목길에 여유를 느낀다. 얼핏 보면 똑같은 집인 듯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창문 문창살이 조금씩 다르고 담장도 다르다. 시대를 넘어선 북촌한옥마을은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골목이다. 국내는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곳을 찾으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궁궐 사이 위치한 귀족촌

지하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로 나와 헌법재판소 쪽으로 걸으면 금세 북촌한옥마을에 다다른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해 있고, 서울의 대로인 종로 북쪽에 있다 하여 북촌이라 명칭이 붙었다. 가회동과 송현동, 안국동, 삼청동, 사간동, 계동, 소격동 등이 포함돼 있다.

지리적으로 보면 북촌은 한양의 중심에 위치했고,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곳이었다. 북으로 갈수록 계곡이 깊어지고 남쪽은 비교적 완만하고 청계천에 이르는, 그야말로 배산임수 형태를 띤 명당이다.

오늘날 이곳은 북촌 8경이 유명하다. 북촌한옥마을에서도 경관과 경치가 좋은 8곳의 장소를 말한다. 전통의 아름다움과 자연 경관을 함께 즐길 수 있어 관광객들의 셔터 소리는 곳곳에서 들을 수 있다.

◆귀족들이 모여 산 동네

과거 이곳은 당대 권문세가들이 모여산 귀족촌이었다. 1906년 호적 자료에 보면, 북촌 인구 1만 241명 중 양반과 관료의 비율이 43.6%나 됐다. 북촌의 위상은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도 이어졌다. 박영효와 김옥균, 민대식 등의 개화파가 북촌에 거주했다. 또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이곳에 살았다.

이곳의 반대편인 남산 기슭에 형성된 남촌은 하급 관리들이 주로 모여 살았다. 궁핍한 선비인 일명 ‘남산골샌님’이 살기도 했다. 작가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에 등장하는 허생이 대표적이다. 이 소설에 보면 허생은 전형적인 남촌 선비였는데, 어느 날 북촌을 찾게 됐다.

허생은 북촌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누구인지 물었다. 사람들은 ‘변씨’ 성을 가진 이가 가장 부자라고 답했고 그를 찾아간 허생은 거금을 빌려달라고 한다. 그 돈으로 조선 팔도 곳곳의 상품을 매점매석해, 상품이 품절되면 비싼 돈을 주고 파는 방식으로 큰 이익을 남긴다. 이 소설은 당시 조선 경제가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꼬집는 내용이 담겨 있다.

◆대부분이 도시형 한옥구조

일제강점기에는 북촌에서 현대화가 계속 진행됐다. 특히, 1990년대에는 다세대주택 때문에 많은 수의 한옥이 사라졌다. 이처럼 한옥이 점점 사라지고 북촌 경관이 변화되자 1999년 서울시에서 북촌 가꾸기 정책을 수립했다. 한옥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전통을 보존하고자 하는 취지였다.

현재 북촌 한옥마을의 대부분의 구조는 평면이 ‘ㄷ’이나 ‘ㅁ’모양으로 돼 있다. 도시형 한옥구조인 셈이다. 그래서 외부에서 마당이 노출된 전통 한옥과 달리 길에서 보면 높은 대문과 방으로 막혀 집안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청와대 인근 인접 지역으로 개발 규제와 한옥 보존 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오늘날도 전통 주거문화를 고스란히 지키고 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박물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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