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칼럼] 대한제국 시대 육군무관학교를 찾아서
[박관우 칼럼] 대한제국 시대 육군무관학교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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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지금으로부터 122년전인 1897년(광무 1) 10월 12일 고종(高宗)이 현재 조선호텔에 위치했던 원구단(圓丘壇)에서 천제(天祭)를 올리고 황제에 즉위하면서 대한제국(大韓帝國)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했다.

비록 13년간 유지되었던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대한제국 시대에 있었던 건축물인 육군무관학교(陸軍武官學校)를 본 칼럼에 소개한다.

무관학교는 신식화(新式化)된 근대적 군대를 지휘할 초급장교(初級將校)를 양성할 목적으로 1896년(건양 1) 1월 11일에 고종의 칙령(勅令) 제2호에 의해 설립됐으며, 1909년(융희 3) 9월 15일 순종황제(純宗皇帝)의 무관학교 폐지시기에 관한 칙령에 의하여 폐지됐다.

그런데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수도 있으나 대한제국과 무관학교가 공통적으로 13년동안 유지됐다는 점에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무관학교가 위치하고 있었던 지역은 처음에는 경우궁(景祐宮)터에 설립했다가 다시 1898년(광무 2) 7월 경희궁(慶熙宮) 동쪽에 있었던 훈국신영(訓局新營)터로 이축(移築)하였다.

무관학교는 13년동안 유지되면서 2회에 걸쳐서 총 282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는데 1회는 졸업(卒業)과 동시에 임관(任官)됐으나 2회는 임관과 졸업 인원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관학교의 건축규모를 소개하면 상(上),하(河) 2층으로 되어 있는 양제학도실(洋製學徒室)을 비롯해 3백칸이 넘는 많은 건축물들이 있었으나 현재는 그 어떤 건축물도 보존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필자가 10년전, 대한제국의 발상지(發祥地) 원구단과 고종황제(高宗皇帝) 즉위 40주년을 기념하여 건립한 석고각(石鼓閣)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관련 사진과 철거 경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는데 이번에는 무관학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러나 당시의 무관학교 모습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사진은 발견하지 못했으며, 그나마 1898년(광무 2) 교관(敎官)들과 학도(學徒)들이 함께 촬영한 배경에 무관학교 건축물을 발견한 것이 유일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3백 칸이 넘었던 건축물들이 지금은 전부 사라졌다는 것인데 1909년(융희 3) 무관학교가 폐지되면서 그 기능을 상실한 이후 무관학교에 있었던 건축물들이 하나씩 철거되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완전히 철거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당시의 건축물들을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역사의 뼈저린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어떤 경위로 철거된 것인지 그 진실만큼은 규명하고 싶은 것이다.

무관학교는 현재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3길에 위치하고 있는 신문로빌딩 일대에 있었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전혀 볼 수 없지만 설치된 표석을 통해 대한제국 시대에 무관학교가 존재하였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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