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성완 기자] 지난 15일 북한 선원 4명이 탄 어선이 연안에서 조업 중인 어민의 신고로 발견됐다는 정부 당국의 발표와 달리 삼척항에 정박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북한 어선이 삼척항 내에 정박됐다가 예인되는 모습. (출처: 독자제공) ⓒ천지일보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지난 15일 북한 선원 4명이 탄 어선이 연안에서 조업 중인 어민의 신고로 발견됐다는 정부 당국의 발표와 달리 삼척항에 정박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북한 어선이 삼척항 내에 정박됐다가 예인되는 모습. (출처: 독자제공) ⓒ천지일보

울진삼척공비 떠올리며 우려표시

반복된 北 사건에 무뎌진 주민도

감시망 뚫린 당국 질타는 공통

[천지일보=홍수영·김성완 기자] 북한 선원이 탄 어선이 어떤 제지도 없이 지난 15일 동해를 따라 강원도 삼척시 삼척항에 입항하는 일이 발생했다. 주민들 상당수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정부를 성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었다.

북한 어선이 삼척항에 입항한 지 엿새가 지난 21일. 본지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삼척항을 찾았다. 여느 때와 다른 바 없이 삼척항엔 고깃배가 드나들며 해산물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어민들도 생업에 종사하며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간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날 삼척 해변은 꼭 주민들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듯 거센 바람이 불며 나뭇가지를 흔들어댔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어두운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취재진이 만난 많은 주민들은 당시 느꼈던 불안감을 아직 떨쳐내지 못했다.

삼척항 인근 정하동에 사는 김용호(65, 남)씨는 북한 배가 정박하던 당시를 생생히 기억했다. 그는 “뭔가 배가 시커멓고 그런 게 보자마자 북한 선박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국엔 저런 배가 없다”며 “아니나 다를까 해경이 예인해가더라”고 말했다.

김씨는 북한 선박이 우리 항구에 입항할 때까지 아무런 조치를 하지 못한 해경을 질타했다. 그는 “예전에 바다 위에서 내 배가 고장이 나서 해경을 불렀는데 그 큰 배가 한참이 지나도 우리 위치를 찾지 못하더라. 결국 다른 어선이 레이더를 동원해 찾았다”며 “매일같이 순찰하는데 못 발견했다는 게 말이 되냐”고 비난했다.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북한 선원 4명이 탄 어선이 지난 15일 강원도 삼척시 삼척항에 정박하는 일이 발생했다. 주민의 신고로 해당 어선은 예인됐으며, 우리 군은 경계망이 뚫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사진은 21일 촬영한 북한 어선이 정박했던 삼척항 부두에서 어민들이 바다에서 잡은 해산물을 배에서 내리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 2019.6.21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북한 선원 4명이 탄 어선이 지난 15일 강원도 삼척시 삼척항에 정박하는 일이 발생했다. 주민의 신고로 해당 어선은 예인됐으며, 우리 군은 경계망이 뚫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사진은 21일 촬영한 북한 어선이 정박했던 삼척항 부두에서 어민들이 바다에서 잡은 해산물을 배에서 내리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 2019.6.21

실제 사건 당일 오전엔 해상의 모든 선박의 수를 세어 결산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북한 어선을 발견하지 못하면서 선박결산도, 수제선 정밀 정찰도 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앞서 삼척 지역은 1968년 11월 울진삼척공비 침투사건을 겪은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곳이다. 당시 이 사건은 민간인을 포함 19명의 사망자를 냈다. 또 1996년 9월 18일 강릉 잠수함침투 및 좌초사건, 1998년 6월 22일 그물에 걸려 발견된 속초 유고급 잠수정사건 등도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탓에 북한 관련 사건에 상당히 예민하다.

삼척에서 어업을 하는 이윤석(가명, 67, 남)씨 역시 삼척에서 오랜 세월 보낸 주민으로서 관련 사건들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씨는 “군대고 경찰이고 어떻게 다 이러냐. 우리가 뭘 믿고 살 수 있는가. 이 동네는 예전에 무장공비들이 침투해서 여러명의 사망자를 낸 곳”이라며 “그걸 겪었던 사람들인데 겁이 안 나겠나”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잘은 모르지만 이 배 이전에도 더 많은 배와 사람이 여기저기 들어와서 있을 지도 모르는 것 아니냐”며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모든 주민들이 불안에 떠는 것은 아니었다.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북한 선원 4명이 탄 어선이 지난 15일 강원도 삼척시 삼척항에 정박하는 일이 발생했다. 주민의 신고로 해당 어선은 예인됐으며, 우리 군은 경계망이 뚫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사진은 21일 촬영한 북한 어선이 정박했던 삼척항 부두의 모습. ⓒ천지일보 2019.6.21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북한 선원 4명이 탄 어선이 지난 15일 강원도 삼척시 삼척항에 정박하는 일이 발생했다. 주민의 신고로 해당 어선은 예인됐으며, 우리 군은 경계망이 뚫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사진은 21일 촬영한 북한 어선이 정박했던 삼척항 부두의 모습. ⓒ천지일보 2019.6.21

삼척항 인근에서 건어물공판장을 하는 박미령(40대, 여)씨는 이번 사건에 대해 특별한 염려를 내비치진 않았다. 박씨는 일종의 자포자기 상태였다. 그는 “솔직히 너무 접하다보면 어느 정도 포기상태가 되는 것 같다”며 덤덤히 말했다.

한정수(가명, 60대, 남)씨는 배를 직접 목격한 사람 중 하나다. 한씨는 “주민들 몇몇이 몰려가서 사진 찍고 구경하는 걸 보는데 배 위에 까만 옷 입은 사람이 있었다. 나중에서야 해경이 왔다”며 “당국의 발표가 엉터리였다. 거짓말하고 그럼 안 된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한씨는 불안감을 느끼진 않았다고 전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온 사람들이라는 뿐 걱정할 부분은 아니라는 것이다.

반복 되는 북한 관련 이슈에 내성이 생긴 시민도 있었다. 근처 강원대학교 학생인 송민석(20, 남)씨는 “사실 체감상 위험을 느끼지 않는다. 실생활에 큰 영향이 없고, 먹고 사는데 바빠서 그런 거 같다”며 “한국 사람들은 오랫동안 북한과 긴장관계 속에 지내왔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그냥 그런가보다’하는 게 있는 거 같다”고 설명했다.

삼척항 주변 편의점 직원 이서현(가명, 40대, 여)씨는 “뉴스를 보고 북한 배의 입항을 알았는데, 근데 바로 딱 여기더라”며 놀라워하긴 했지만, 자기가 활동하는 바로 이 지역이라는 놀라움일 뿐, 위협이나 두려움을 느끼진 않았다고 밝혔다.

앞서 북한 주민 4명이 탄 어선 1척은 관계기관 합동조사 결과 지난 12일 오후 9시쯤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은 뒤 사흘 동안 영해에 머물렀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해군과 육군, 해경의 3중 감시망이 모두 뚫렸다며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군 당국은 ‘경계작전 실패’를 인정하고 대응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가 사안을 축소·은폐하려 한다는 의혹까지 번지면서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북한 주민 4명 중 2명은 귀순의사를 밝혔고 다른 두 명은 북한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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