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일인 7일 오후 광화문 사거리에서 ‘회개와 구국기도회’를 열고 있다. 한기총 엄기호(오른쪽 첫 번째) 대표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한미동맹이 공고히 되길 기도한다”고 밝혔다. ⓒ천지일보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일인 7일 오후 광화문 사거리에서 ‘회개와 구국기도회’를 열고 있다. ⓒ천지일보

‘삼선개헌‧5공화국’ 지지 장로교 목사들이 탄생시킨 한기총

30년 지난 지금은 전국 253개 선거구 공략 ‘정치세력화’

개신교 내 비판 여론 거세… 문체부에 해체 청원 계류 중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정치참여 문제로 연일 화두에 오르내린다. 30여년 개신교를 대표한다 자부한 연합기구로서 ‘종교냐 정치냐’하는 정체성 논란에 직면한 것이다. 창립 이전부터 정치적 배경을 둔 한기총이 부패를 거듭하며 이제는 파멸을 앞두고 노골적인 정치활동으로 그 정체를 드러냈다는 비판도 나온다.

올해 햇수로 30주년을 맞은 한기총은 그간 한국교회의 대표성을 띤 교단연합단체로 이름을 날렸다. 창립 때부터 교세로 한국교회를 좌지우지했던 장로교가 주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탄생 배경에 자리한 정치색이 결국 자멸을 불러오고 있다.

한기총의 탄생 배경에는 보수 장로교 목회자들이 있다. 해방 후 이들은 지극히 친군부, 친정권 행적을 보였다.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삼선개헌을 지지했던 보수 장로교 목회자들은 1980년 내란 주동자인 전두환 국보위 위원장을 위한 조찬 기도회에 대거 참여해 면죄부를 주는 등 권력과 야합하는 행태를 이어갔다. 당시 5공화국 내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반대자 척결을 위한 대책반이 운영됐고 종교대책반도 그중 하나였다.

반공 이데올로기를 경계한 진보색채의 교단연합기구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견제하기 위한 단체가 필요했고, 박 전 대통령의 독재와 5공화국을 지지했던 보수 목회자들은 1989년 강남중앙침레교회에서 한기총을 탄생시킨다. 5공화국 정부가 한기총 창설을 지원했다는 주장도 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소속 이세홍 목사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어디로 가고있는가?’기자회견에서 항의하자 한 교인이 그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있다. ⓒ천지일보 2019.6.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소속 이세홍 목사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어디로 가고있는가?’기자회견에서 항의하자 한 교인이 그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있다. ⓒ천지일보 2019.6.11

◆ 보수 색체 배경으로 탄생… 극보수로 고정

한기총 창립에 나섰던 목회자들은 특히 더 권력층에 고개를 조아렸던 전력을 갖고 있었다. 초대 대표회장인 한경직 목사 등 창립 주축을 이룬 목회자들은 1980년 8월 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에서 군부 정권을 찬양했다.

당시 성결교 증경총회장 정진경 목사(신촌성결교회)는 전두환 상임위원장을 위한 기도에서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추앙했다. 정 목사는 한기총 2대 대표회장을 역임했다.

이처럼 삼선개헌과 5공화국 지지에 앞장섰던 보수 장로교를 주축으로 출범된 한기총에는 36개 교단, 8개 기관이 참여했다. 당시 회원 100만명이던 한기총은 이후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급성장했다. 한기총은 역대 정권의 주요 현안과 발맞추며 주요 행사마다 개신교 대표 단체로 참석하는 등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구로 자리잡았다.

특히 박근혜 전(前) 대통령 탄핵 전까지는 추진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드 배치 등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박근혜 정권을 옹호했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인 테러방지법, 국정교과서, 국가보안법 등에 대해 줄곧 보수정권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냈다. 명분은 구국 기도회였지만 그 성격이 친미, 반공을 지지하는 성향을 띠는 집회도 수차례 열었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면서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유력 대선주자로 지목되자 한기총 이영훈 회장 등 일부 인사들은 친 더불어민주당 행보를 보여, 권력 따라 움직이는 한기총의 모습을 또 한 번 확인시킨 바 있다.

역대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우군’을 자처했던 한기총의 모습은 올해 수장이 바뀌면서 궤도를 틀었다. 한기총은 전광훈 목사가 대표회장으로 선출되면서 극보수 측으로 방향을 고정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특정 정당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를 표하는 등 직접적으로 정치세력화에 나섰다. 한기총은 내년 4.15총선을 대비한다면서 전국 253개 선거구에 지역연합회를 세우고 지역위원장에 목회자들을 앉혔다.

전 목사는 한기총 회원들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내년 4.15총선을 강조하며 자신이 정치에 뛰어드는 이유에 대해 “오늘날 정치권들이 주사파를 추종하고, 보수정치인들도 아무 생각 없이 오직 국회의원 뱃지를 하나님처럼 섬기므로, 70년 동안 이루어놓은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처참히 무너뜨리고 있다”며 “우리 대한민국도 문재인을 속히 하야시키고 잘못된 정치권을 단호히 척결하여 대한민국을 바로 세워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은재 대변인도 자료를 배포하고 “한국교회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한미동맹으로 대한민국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당연히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며 “복음과 교회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사회주의자 또는 공산주의로부터의 한국교회 파괴운동에 정치적 역랑을 다해 대처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 목사는 “기독자유당은 국회 입성 기반을 갖고 있다”며 “동성애‧이슬람‧차별금지법을 반대하지 않는 의원은 이에 동조하는 의원으로 보고 낙선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천지일보 2018.8.23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천지일보 2018.8.23

◆ 정치세력화에 반감… “한기총 역사적 소멸 계기될 것”

그러나 한국교회 내에서는 한기총의 이같은 정치적 노선에 비판적 시각이 크다.

주요 언론에서 한기총의 이 같은 정치세력화에 대해 보도하자 진보 개신교계 단체인 평화나무 등은 한기총의 정치적 행보가 종교단체의 성격에서 벗어났다고 지적하며 문화체육관광부에 한기총 설립 취소 청원 문건과 온라인 서명을 전달했다. 최근에는 2차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사실 한기총 설립 취지문에도 정치적인 노선은 ‘중립’을 명시하고 있다. 정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국교회에 주신 사명에 충실하기 위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않으면서 연합과 일치를 이루어 교회 본연의 사명을 다하는 데 일체가 될 것을 다짐했다’고 밝혔지만 극보수색체를 띠며 ‘일체’와는 거리가 먼 길을 걸어가고 있는 셈이다.

개신교 학자들의 비판도 상당하다. 고신대 손봉호 석좌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전 목사가 발표한 시국선언을 강하게 비판하며 “기독교가 정치에 개입할 분야는 인권과 정의 그리고 평화”라고 강조했다. 그간 한기총 해체 운동을 펼쳐왔던 손봉호 교수는 최근 한 일간지를 통해 “(전 목사의) 애국심 그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런데 그걸 ‘기독교’의 이름으로 하는 것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기독교가 정치 문제에 개입할 분야는 국한돼 있다 ‘인권과 정의, 평화’다”라고 단언했다.

손 교수는 예수 당시의 일화를 들어 기독교적 가치도 설명했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이스라엘을 강대국으로 만들기를 기대했지만, 예수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살다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했다. 손 교수는 “기독교는 세속적인 정치에 대해 가장 거리를 두어야 하는 종교”라며 “예수님 당신이 몸소 정치적 메시아를 거부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손 교수는 “전 목사가 너무 지나치게 (발언과 활동을) 한 까닭에 오히려 반작용이 커져 버렸다”며 “전 목사와 한기총은 자기 자신을 향해 굉장한 손해를 끼쳤고, 대표성을 상실한 한기총이란 단체가 역사적으로 소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 박득훈 목사도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한기총의 정치행보에 대해 “교회가 정치에 대해서 발언할 때는 부패하고 부당한 지배 세력과 결탁하는 참여를 하면 안 되는 거거든요”라며 “사회적 약자를 억누르고 무시하고 폄훼하는 그런 세력과 결탁해서 이 사회를 더 어두운 방향으로 끌고 가는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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