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소설가 이청준이 지난 1974년 발표한 대표작 ‘당신들의 천국’은 천형의 땅 소록도를 배경으로 한센병 환자들의 지도자와 그 원생들 간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소설에서 야심 많고 정열적인 인물인 현역 대령인 조백헌 소록도 병원장은 취임하면서 환자들에게 소록도를 새로운 천국으로 만들어 주겠다며 생에 대한 투철한 자신감을 길러주기 위해 축구팀을 만들었다. 축구를 통해 환자건 비환자건 섬 주민 5천여명이 그냥 한 사람인 것처럼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흥분하면서 점차 고단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감을 회복해 나갈 수 있었다.

지난 주 한국남자 축구 사상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대회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달성하고 금의 환향한 20세 이하 대표팀을 보면서 젊었을 적 감동적으로 읽었던 이청준 소설이 떠올랐다. 20세 이하 대표팀은 북한 핵위협과 안보불안, 진보와 보수의 심각한 대립, 경제적인 저성장과 불평등 확대 등으로 바람 잘 날 없는 국민들의 일상 생활에 큰 행복과 기쁨을 듬뿍 주었다. 어린 대표선수들은 결승, 준결승, 8강전 등에서 상상 이상을 넘어서는 멋진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국민 모두가 이념문제, 세대 갈등 등 난적한 현실을 일시적으로 잊은 채 한 마음이 되게 해주었다. 마치 일상이 고행인 이청준 소설의 소록도 주민들이 축구를 통해 인간적인 신뢰감을 형성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번 20세 이하 대표팀의 감동은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 선수권대회 4강,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때와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박종환 감독이 이끌었던 멕시코 세계청소년 선수권대회 4강은 세계 축구의 변방국이던 한국을 처음으로 알리는 기폭제가 됐다. 변변한 프로팀 하나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던 한국 축구는 박종환 감독이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의 권위적인 지휘력과 선수들의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을 바탕으로 멕시코 등 축구 선진국 등을 잇달아 무너뜨리며 남자축구 사상 첫 세계 4강의 성적을 올렸다. 당시 군 복무중이던 필자는 브라질과의 4강전에서 신연호 등 붉은 전사들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을 보면서 가슴 한켠에선 뜨거운 애국심이 솟아 올랐다. 1980년 광주민주항쟁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유례없는 경제 ‘3저 호황’을 맞으면서 경제적으로 안정된 기회를 맞았던 무렵이라 멕시코 청소년 세계대회 4강은 발전하는 한국의 밝은 미래를 예고하는 듯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는 히딩크 감독이라는 세계적인 외국인 지도자를 영입하면서 월드컵 4강이라는 기적같은 성적을 올리며 축구의 세계화에 본격적으로 올라서게 되는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병폐인 학교 파벌과 인맥 관계에 의한 선수 선발과 운영 대신에 체력, 기술의 기본기를 우선시하며 적재적소에 선수를 투입하는 선진 포메이션을 선보였다. 국민들은 5천만이 거리의 붉은 악마로 응원을 펼치며 히딩크 감독과 월드컵 대표선수들을 격려하고 힘을 실어주었다.

이번 20세 이하 대표팀은 Y세대로 대표되는 개성 강하고 생기 발랄한 캐릭터들로 서로 소통하며 ‘한 팀’의 중요성을 깨닫고 스스로의 힘으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막내형’ 이강인을 비롯 골키퍼 이광연 등 선수들과 정정용 감독은 서로의 개성을 존중해가면서 팀플레이에 매진했던 것이다.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에서 부진했던 김정민에 대해 SNS상에 도를 넘는 비난이 쏟아지자 대표팀 환영행사에서 이강인 이하 선수들이 김정민에게 “기 죽지 말라. 너가 잘 못한 것 없다. 승패는 모두 팀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라며 격려하는 장면도 보였다. 이번 20세이하 축구대표팀이 만들어 준 ‘당신들의 천국’은 모든 국민에게 오랫동안 결코 잊지 못할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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