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전용기 편으로 평양에 도착해 1박 2일의 국빈 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이 자리에는 딩쉐샹 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등이 함께 했다. 중국 최고 지도자가 북한을 방문하는 건 지난 2005년 후진타오 당시 주석 이후 14년만의 일이다. 당시 후진타오 주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했다. 따라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체제 들어서 북중 두 정상이 평양에서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진핑 주석의 이번 방북이 주는 메시지는 간단치 않아 보인다. 우선 시 주석은 오는 28일부터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에 미중 정상회담을 갖는다. 미중 무역전쟁을 둘러싼 향후 전망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더 격화될 것인지, 아니면 한발씩 물러나는 방식으로 타협국면으로 갈 것인지의 갈림길이다.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이유라 하겠다. 여기에 큰 이슈 하나가 더 추가됐다. 바로 북핵 문제이다. 시 주석이 미중 정상회담 직전에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평양으로 가서 만난다는 것 자체가 북핵 해법에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오사카에서의 미중 정상회담은 한반도 정세에도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북핵 해법 판은 커지고 갈 길은 멀다

시진핑 주석의 평양 방문 소식이 전해지자 미 국무부는 “미국은 파트너 국가 및 동맹국들, 중국을 포함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과 함께 북한의 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라는 공동 목표에 전념하고 있다”는 말로 대신했다.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 가능한 비핵화(FFVD) 목표를 위해 중국과도 협력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냉정하게 본다면 미국에게 그다지 유리한 국면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얼마 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때처럼 판을 걷어차는 방식이라면 북한과 중국 어느 쪽도 미국의 주장에 끌려가는 대화는 더 이상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전쟁을 통해 시진핑 주석도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으로 족하지 두 번씩이나 당하는 일은 쉽지 않다는 뜻이다.

한국 정부의 입장은 더 어렵게 됐다. 북미 양국의 톱다운 방식을 통해 ‘단계적․포괄적 접근’으로 북핵 문제를 풀려던 기존의 입장이 동력을 잃은 데 이어 이번에는 중국이 본격적으로 개입되면서 판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에 상당히 실망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하느니 차라리 시진핑 주석을 통해 미국의 결단을 촉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게다가 남북관계마저 일일이 미국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문재인 정부를 보면서 그 실망감은 더 커졌을 것이다. 이번 오사카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을 평양으로 초청한 배경이라 하겠다.

이제 시진핑 주석의 역할이 훨씬 커졌다.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해법도 큰 관심사지만 북핵 문제와 관련해 김정은 위원장의 의중과 트럼프 대통령의 셈법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파악하고 그 해법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북한 입장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중국의 중재에 더 큰 기대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이 있다면 중국의 중재 협상까지 판을 뒤엎기는 큰 부담이다. 이번 북중 정상회담이 그만큼 한국과 미국의 입지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이유인 셈이다.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는 문재인 정부를 지렛대로 삼아 북핵 해법을 놓고 실익을 톡톡히 챙기는 전략을 구사했다. 툭하면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하려 했으며 기회 있을 때마다 미국산 무기를 구매하도록 적잖은 압박까지 시도했다. 물론 상당 부분 성공했으며 그 대가로 적잖은 현금을 손에 쥐었을 것이다. 한국 국민들은 그 과정을 잘 알고 있다. 알면서도, 화가 나면서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지켜봤다. ‘한반도 평화’보다 더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거기에 미국도 함께 해 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노이 담판’은 깨졌다. 한국은 당황했으며 북한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일 것이다. 중국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로 끝났다고 봤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도 아쉬워할까. 어쩌면 속으로 웃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그것이 미국외교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힘없이 코너에 몰려 있는 한반도의 운명이 그저 슬플 따름이다. 잘 기억해 본다면 100여전 전에도 그랬듯이 말이다.

바로 이런 시점에 시진핑 주석이 평양으로 간 것이다. 어쩌면 이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나섰던 그런 게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북한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며 중국도 크게 기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판을 깨는 바람에 문재인 대통령도 중재자 역할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고 말았다. 언제까지 미국산 무기만 구매해 주는 그런 대한민국을 우리 국민들이 동의해 주겠는가. 결과적으로는 트럼프 행정부의 과욕과 무리수가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든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일본 오사카에서 만나 무슨 얘기를 할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이젠 트럼프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 남과 북, 중국도 언제까지 미국의 뜻대로만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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