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시] 꽃잠 - 김명인
[마음이 머무는 시] 꽃잠 - 김명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꽃잠 

김명인(1946 ~  )

운전석 의자를 반쯤 젖혀 놓고
그늘을 모로 꺽은 1톤 트럭의 잠.
행상의 사내 하나
불편한 봄꿈 속으로 내닫고 있다
꽃구경가자고 졸라 대던
환한 그늘이 펼쳐 놓은 것일까
새벽 장에서 받아 온 1톤의 채소들이
저희끼리 손님을 받을지 말지,
천막을 옆구리로 걷어붙인
주인의 꽃잠 속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시평]

예전에는 장사라는 의미의 한자어는 장사 ‘고(賈)’와 장사 ‘상(商)’, 이렇게 두 가지 글자를 구분해 썼다. 장사를 한다는 의미의 ‘고(賈)’는 한 자리에서 상점을 벌리고 하는 장사를 말한다면, 같은 뜻의 ‘상(商)’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하는 장사를 의미한다. 즉 오늘의 가게에 해당되는 것이 ‘고(賈)’라면, 행상(行商)에 해당되는 것이 ‘상(商)’이다.

마땅한 가게 하나 얻을 밑천이 없어 1톤 정도의 작은 트럭 하나 지니고는 야채 등을 청과상에서 받아다가,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니며 확성기를 틀어놓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 “야채가 왔어요, 싱싱한 배추, 무가 왔어요” 하며 골목마다 다니며 손님을 기다리는 행상 1톤 트럭. 비록 봇짐 대신에 트럭에 물건을 실었어도, 오늘의 행상이 아닐 수 없다.

어디 한 군데 정착할 곳도 없이 이리저리 떠다니는, 어찌 보면, 참으로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햇살이 무척 밝게 떨어지는 아침녘이면 여지없이 골목 어귀에 나타나는 단골 행상 야채장사. 세상의 사람들 모두 꽃구경을 가도, 꽃구경 한번 가보지 못한 채 마을 꽃그늘 사이로 행상 트럭을 몰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사람.

하루의 일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피로가 몰려와 그만 트럭을 세워놓고 잠시 눈을 붙인다. 마을에는 봄꽃들이 피어 담장 너머를 그늘을 늘어뜨리고 있는 오후, 그 꽃그늘 속에서 달디 단 꽃잠을 잔다. 새벽 장에서 받아 온 채소들이, 저희끼리 손님을 받을지 말지, 천막을 옆구리로 걷어붙인 주인의 꽃잠 속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오후이다. 노동의 그 시간을 잠시하고 자는 잠, 참으로 꽃잠이 아닐 수 없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