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19세기 말 조선을 보면 백성은 헐벗고 굶주리는데 탐관오리는 때를 만났다는 듯이 좋아했다. 조정은 썩어 문드러진 탓에 문제가 무엇인지 인식도 못하고 권력 유지에 급급했다.

19세기 100년 동안 백성들이 “못살겠소! 제발 살게 해주시오!”하고 들고 일어나면 역모로 몰아 목숨을 빼앗거나 노비로 삼았다. 조정이 곤란한 상황에 놓여 있어 토벌할 수 없거나 토벌을 하기엔 힘이 모자랄 때만 달래는 ‘위무 공작’을 벌였을 뿐이다.

세계정세가 어떻게 바뀌는지 인식하려 하지도 않고 인식할 능력도 없는 군주 고종과 왕후 민씨! 권력에 대한 집착은 강해서 새로운 세력을 경계하고 억누르는데 여념이 없었다. 새로운 기운이 일어날 가능성은 원천봉쇄 됐다. 결국 조선 사회는 갈 길을 잃고 말았다.

조선 말 조정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던 두 흐름이 있었다. 하나는 오늘날 기독교라 불리는 서학이고 또 하나는 서양 세력의 출몰에 대한 대응책으로 나온 동학이다. 두 흐름의 공통점은 인간 평등사상에 기초하고 조선의 기존 체제의 변화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서학은 통치 철학과 신념체계의 변화를 요구했고 동학은 신념체계의 변화뿐만 아니라 계급구조의 변혁을 요구했다.

조선 조정은 서학은 물론 동학 신봉자를 역적으로 간주했다. 서학에 대한 탄압은 익히 알려진 바다. 1866년에는 무려 8000명에 이르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야만성을 보였다. 서학에 완강한 반응을 보이던 조정은 결국 서학을 허용하기에 이르렀는데 스스로의 결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세의 힘에 굴복한 결과이다.

동학에 대해 역도로 몰던 조정은 입장을 바꿀 의지가 전혀 없었다. 동학은 서학처럼 제사를 부정하는 것도 아닌데 더욱 완강한 태도를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통치의 대상, 착취의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1960년 경주의 최제우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사상에 기초한 동학을 창시한 이래 동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늘었다. 조정에서는 역도로 간주하여 동학 신봉자를 처벌하는 동시에 최제우를 체포하기에 이른다. 교주를 체포해 효수하고 믿는 사람들을 가혹하게 탄압해도 교세는 수그러들지 않고 퍼져 나갔다.

백성의 외침을 외면하고 억압하는 사이 외세의 침략은 더욱 가속화했다. 조선의 자주권은 무너져 갔으며 민생은 외세에 내맡겨지고 자원은 강탈당했다. 외세의 영향력을 경계하고 자주적인 힘을 모으고자 했던 동학이 억눌리는 사이 외세의 영향력은 급속히 증가했다. 그럼에도 조정은 동학에 대해 탄압 방침을 바꾸지 않았다. 교조 최제우의 신원을 요구하는 동학 교인들을 내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1893년 1월 동학교도 대표 40여명이 경복궁 앞뜰에서 3일 밤낮 ‘복합상소’를 했다. 귀가하면 들어 줄 것처럼 말해 해산시켰다. 해산하자마자 ‘역도로 몰아 처벌하겠다’는 태도로 돌변했다.

1894년 2월 농민들이 고부에서 봉기한 이래 삼남 일대는 물론 조선 팔도에 거대한 민중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조정은 관군을 보내 적을 대하듯 살육 작전을 전개했다. 관군은 패배하고 전주성까지 함락 당하자 전주화약을 맺어 화해하는 행동을 했다. 동시에 외세에 군대 출병을 요청하는 우둔하고 통탄할만한 행동을 하기에 이른다.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자국민을 살해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고 치욕스런 결정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청나라는 파병을 요청받자마자 곧바로 군대를 보냈고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일본도 군대를 보내 나라가 결딴나는 상황에 이른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고종과 왕후 민씨이다. 이후 경복궁과 서울이 일본군에 점령당하고 고종은 포로로 잡히고 일본군에 의해 조선의 농민들이 대량 학살됐다. 다음 해에는 중전 민씨까지 죽음에 이르게 되는 역사적 비극이 이어졌다. 급기야는 고종이 왕궁을 탈출해서 남의 나라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외세를 끌어들여 백성을 학살한 결과다.

지금 미국이라는 외세에 짓눌려 한국정부는 꼼짝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민족 내부의 문제인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 재개 같은 문제조차 미국이 ‘재가’를 하지 않아 진행이 안 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 국기를 들고 나와 연일 거리를 행진하는 세력이 있고 심지어 외세로부터 독립을 외친 3.1절 날조차 미국 국기를 가지고 거리로 나오는 상황이다. 전 민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신 차리지 않으면 또 다시 외세의 말발굽에 짓밟히는 역사가 반복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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