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A사가 기보에서 진행한 IP기술가치평가가 현실성 없이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사진은 기보 본점 전경 (제공: 기술보증기금) ⓒ천지일보 2019.6.5
벤처기업 A사가 기보에서 진행한 IP기술가치평가가 현실성 없이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사진은 기보 본점 전경 (제공: 기술보증기금) ⓒ천지일보 2019.6.5

A사 “한은에 ‘없는 코드’ 근거로 산출”
“행정편의주의적 평가에 수출 길 막혀”
기보 “동종업계 코드기재, A사가 확대”
전문가 “기보가 실질 원가 조사했어야”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기술보증기금(기보, 이사장 정윤모)이 특허가치를 부실평가해 138억원 가치의 특허기술이 1200만원짜리로 전락, 수출 길까지 막혔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특허기술을 보유한 벤처기업의 경우 기보로부터 받은 특허가치 평가를 기준으로 은행대출을 받아 제품을 생산하고, 이후 발생되는 수익을 통해 대출금을 갚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기보의 부실 평가로 대출이 막힌 경우, 해당 기업은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된다. 이는 자칫 벤처기업의 사기를 떨어트려 궁극적으로 국가적 손실로도 이어질 수 있다.

◆“기보가 기재한 ‘한은 C29172’는 허위”

벤처기업 A사는 기보로부터 2017년 11월 IP(지적재산권) 담보 대출을 위해 기보 지점을 통해 대금을 지급하고 특허가치평가를 의뢰했으나 대출을 받을 수 없는 등급을 받았다. 1997년 설립된 A사는 ‘항온항습기 구조변화에 따른 효과 특허기술’을 5년여간 연구 끝에 개발해 지난 2008년 12월 특허를 받은 바 있다.

A사에 따르면 강남소재 모 특허법인에 의뢰해 2개월여 심사를 거쳐 확인된 해당 특허기술의 가치는 138억원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기보로부터 받은 특허가치 평가 금액은 자체 평가액의 1/1000도 안 되는 1200만원이었다.

A사는 “기보가 해당 기술을 통한 총예상 매출을 148억원으로 책정해놓고도, 특허기술 평가액은 1200만원으로 산출했다는 자체가 비상식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보가 A사에 제공한 평가서에 따르면 특허가치 평가에 근간이 되는 매출원가, 판매비, 관리비 산출과정에 “2016년도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상의 동업종(C29172 : 공기조화장치 제조업)의 평균비율을 근거로 (특허가치를) 추정하기로 했다”고 기록돼 있다. 특허기술을 평가하는 데 있어 판매원가(제조원가)와 판매관리비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A사가 확인한 결과 기보가 평가 근거로 기술한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상 ‘C29172’라는 코드는 존재하지 않았다.

A사 측은 “한은에 이 코드에 대한 분석 값이 실제 있는 줄 알고 한 달간 원인을 분석했다. 그러나 이후 확인 과정에서 ‘없는 코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는 “기보가 기술평가를 허위 및 왜곡한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기보 측은 천지일보와의 통화에서 “한은 기업경영분석상에 C29172가 없다”는 주장에는 반박을 못했다. 그러면서도 “한은 기업경영분석에서 공기조화장치(공조기)에 관한 세세 정보가 담겨 있지 않아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없어 기업에 유리한 C29(기타기계 및 장비)를 적용해 평가한 것”이라고 말을 돌렸다.

C29172는 통계청 표준산업분류에서 세세분류인 공조기에 해당된다. 기보가 통계청 분류코드를 기재하면서 이를 한은 경영분석상 코드라고 잘 못 적어서 발생한 오해라는 주장이다. 기보 측은 “동업종이 통계청 분류 코드(C29172)에 해당된다는 것을 언급한 것일 뿐이다. 공조기가 C29에도 포함되기 때문에 이 값을 적용해도 문제가 없다고 본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기업 측은 “에어컨, 제습기, 공조기 등에 대한 부품 가격이나 시장성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품목 값을 넣어야 하는데, 이를 중분류로 묶어 하나의 평균값을 넣는다는 것 자체가 부실 평가”라고 주장했다. 이어 “기보 측에 200만원을 지급하고 평가를 받았으나 제대로 된 특허분석이나 이와 관련한 시장조사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기보가 A사에 제출한 기술가치평가서 내용 중 매출원가 및 판관비 추정과 관련해 한은의 기업경영분석상 C29172의 평균비율을 근거로 했다고 표기돼 있다. 그러나 이 코드에 대한 분석값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며 기보는 C29값을 적용한 것이라 말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6.20
기보가 A사에 제출한 기술가치평가서 내용 중 매출원가 및 판관비 추정과 관련해 한은의 기업경영분석상 C29172의 평균비율을 근거로 했다고 표기돼 있다. 그러나 이 코드에 대한 분석값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며 기보는 C29값을 적용한 것이라 말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6.20

◆“순이익 1%만 남는 현실성 없는 평가”

A사 측은 “기업을 위해서라면 유사한 값을 넣을 게 아니라 정확한 값을 넣는 것이 공정한 평가”라며 “정확한 코드가 없다면 제출된 자료를 토대로 원가 분석했어야 한다. 이는 명백한 허위 기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제품을 한 대 납품한 기록이 있기 때문에 견적서와 세금계산서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도 제조원가를 얼마든지 산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기보 측은 이를 평가에서 무시했다”며 “기보의 행정편의주의와 직무 태만이 빚은 결과”라고 성토했다.

또 A사에 따르면 기보 측이 평가한 기술가치산출표에는 제조원가 80%, 판매관리비 15%가 잡혔고 영업이익은 5%로 작성됐다. 곧 부대잡비를 공제하면 결국 기업에 돌아가는 순이익은 1%만 남아 카드수수료 정도만 겨우 챙기는 평가가 나왔다는 얘기다.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은 결국 잘못된 코드값을 적용했기 때문이라는 게 A사 측의 설명이다.

이에 기보 관계자는 “제품 한 대만 판매한 것을 갖고 매출 실적으로 적용해 판단하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에 업계 평균을 적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본 기술평가는 5명의 전문가가 평가한 것으로, 공정성이나 신뢰성에서 공기관으로서 자신할 수 있다”면서 평가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A사 측은 “제품 한 대에 대한 판매를 통해 제조원가 분석이 충분히 될 텐데 기보 측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면서 “140억원 예상 매출에 이익률이 고작 몇 억원에 불과하다면 누가 기업을 운영하려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이는 도매상보다 적은 이익구조로, 현 동종업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셈법을 적용한 것이며 현실에 맞지 않는 평가”라고 비판했다.

한편 기보의 이번 평가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특허기술평가 전문가는 “평가의뢰 기업의 수차례 요구에도 기보가 실질적인 제조원가를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시장조사에 있어서도 특허의 권리성이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특허법인 관계자 역시 “시장성 평가에 대한 근거(설문조사, 시장분석 자료 등)가 부족하다고 판단돼 추정 매출액의 객관적 타당성이 보장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에 대한 특허의 독점성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업계 평균 기준만을 적용한다면 미래수익이 적정하게 평가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보 평가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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