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장수경 기자] 해외로 반출됐던 조선시대 왕실 관련 유물 2점이 국내로 환수됐다. 19일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조선 시대 숙선옹주(淑善翁主, 1793~1836, 정조의 서차녀, 수빈 박씨 소생)가 살던 궁에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백자이동궁명사각호(白磁履洞宮銘四角壺)’와 조선 시대 왕실 관련 인장인 ‘중화궁인(重華宮印)’을 라이엇 게임즈 후원으로 지난 3월 미국 뉴욕의 경매에서 매입해 들여왔다고 밝혔다. 사진은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관계자들이 백자이동궁명사각호(오른쪽)와 중화궁인을 들고 아래 부분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천지일보 2019.6.19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해외로 반출됐던 조선시대 왕실 관련 유물 2점이 국내로 환수됐다. 19일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조선 시대 숙선옹주(淑善翁主, 1793~1836, 정조의 서차녀, 수빈 박씨 소생)가 살던 궁에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백자이동궁명사각호(白磁履洞宮銘四角壺)’와 조선 시대 왕실 관련 인장인 ‘중화궁인(重華宮印)’을 라이엇 게임즈 후원으로 지난 3월 미국 뉴욕의 경매에서 매입해 들여왔다고 밝혔다. 사진은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관계자들이 백자이동궁명사각호(오른쪽)와 중화궁인을 들고 아래 부분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천지일보 2019.6.19

美 경매 나온 왕실 유물 2점

기업 후원으로 국내 환수
 

사용처 제작시기 등 확인돼

전문가 “도자기 연구 기준점”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조선 19세기 분원 관요(官窯, 왕실 도자기 제조장)에서 제작된 청화로 문양을 그린 백자인 ‘백자이동궁명사각호(白磁履洞宮銘四角壺)’. 단아한 형태의 사각호가 눈길을 끈다. 기존에 발견된 백자와는 분명 다른 느낌이었다. 바닥면에 청화(靑華)로 쓴 ‘履洞宮(이동궁)’이라는 명문이 적혀 있다.

조선시대 왕실 관련 유물 2점이 국내로 환수됐다. 19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언론간담회에서 공개된 유물 2점은 ‘백자이동궁명사각호’와 조선 시대 왕실 관련 인장인 ‘중화궁인(重華宮印)’이다. 이번에 공개된 유물은 조선 시대 왕실 관련 연구의 외연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여 주목을 받고 있다.

◆도자기 연구 기점되는 유물

언론간담회에서 최경화 서강대학교 전인교육원 강사는 ‘백자이동궁명사각호’에 대해 “19세기 초기의 백자 양상을 말해주므로 도자사적 가치는 매우 크다”고 밝혔다.

이 백자는 조선 시대 숙선옹주(淑善翁主, 1793~1836, 정조의 서차녀, 수빈 박씨 소생)가 살던 궁에서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궁(宮)은 왕실 가족이 사용하는 장소에 붙이던 명칭으로 왕자와 공주, 옹주가 혼인 후 거처하던 집도 궁으로 불렀다.

왕실 가족의 궐 밖 궁가는 사동궁(寺洞宮)과 계동궁(桂洞宮) 등 지명을 따서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백자호에 쓰여 있는 ‘이동궁’의 이동(履洞) 역시 서울의 한 지명(현재 서울시 중구 초동 일대)이었다.

최 강사는 “백자항아리가 가진 큰 의미는 사용처를 알 수 있는 것”이라며 “대부분의 백자는 어디서, 누가 썼는지 모르는데 이 도자기는 확인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명문의 ‘이동궁’으로 인해서 백자의 구체적인 제작과 사용연대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선시대 만든 대다수의 백자는 18~19세기라고 할 정도로만 구분이 가능하지만, 이 도자기는 구체적인 제작시기가 파악돼 도자기 연구의 기준점이 된다”며 “이 기준점을 통해 앞뒤를 배열하면 전체 흐름이나 양상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궁가에서 사용한 19세기에 만든 백자의 최고수준을 보여준다고 언급했다. 즉, 숙선공주가 이동궁에서 살기 시작한 1804년경에 분원에서 만들어지는 최고의 백자 항아리임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왕실 인장

또한 조선 시대 왕실 관련 인장인 ‘중화궁인’도 공개됐다. 중화궁인의 인뉴(印鈕, 도장 손잡이)는 서수(瑞獸) 모양이다. 인면(印面, 도장에 글자를 새긴 면)은 ‘重華宮印(중화궁인)’을 전서와 해서가 혼용된 독특한 서체로 조각돼 있다.

서준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중화전은 조선시대 궁궐 내에 있었던 권역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현재까지 남아있거나 위치가 알려진 전각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서 학예연구사는 “중화는 ‘밝음이 거듭된다’라는 뜻으로, 임금이 대대로 현명해 태평성대가 계속됨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특히 순조 연간의 ‘승정원일기’ ‘일성록’ ‘비변사등록’에 1811년 중화궁에서 상참(대신들이 아침 임금님께 국무를 아뢰는 약식의 조회)을 열며 합문(閤門, 편전의 앞문)을 중화문으로 하라는 기사가 남아 있다.

이번 2점의 문화재 환수는 지난 2017년 환수된 ‘효명세자빈 죽책’, 2018년에 국내로 들어온 ‘덕온공주 동제인장’과 ‘덕온공주 집안 한글자료’에 이어 조선 시대 왕실 관련 연구의 외연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 두 문화재는 문화재청 산하 기관인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지건길)이 국외 경매현황을 점검하다가 발견해 전문가들의 가치평가와 문화재청과의 구매 타당성 등을 거친 후 경매로 구매에 성공한 것들이다. 후원은 온라인 게임회사 라이엇 게임즈(한국대표 박준규)에서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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