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최근 다시 탈북민 사회에서 탈북자란 이름을 ‘자유민’으로 바꾸자는 여론이 대두되고 있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현재 탈북민의 법정 용어는 ‘북한이탈주민’이다.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이 나서 “거 너무 이름이 긴데 그냥 탈북자라고 하면 안 될까” 해서 탈북자가 되었고, 탈북민들 스스로는 ‘자’가 들어가는 격하된 말보다 부드러운 ‘민’이 좋아 대충 ‘탈북민’으로 부르고 있다. 앞서 탈북민은 월남귀순용사, 새터민 등을 거쳐 현재의 북한이탈주민으로 정착하였다. 북한이탈주민은 북한 사회에서 이탈한 사람, 즉 대충 낙오자란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탈북자도 예외가 아니다. 만약에 이다음에 통일이 돼 고향에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탈북민들로서는 현재 보다 미래를 생각해 자신들의 호칭을 존엄 있게 지어주길 갈망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 대학에서 동독사를 전공한 최승완 박사가 최근 펴낸 『동독민 이주사』에 따르면 동서독은 40년 분단 기간에도 꾸준히 서신과 소포를 교환하고, 상호방문을 통해 주민 간 접촉을 유지해 왔다. 동서독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 것은 375만~475만 명에 달하는 동독 탈출 주민이었다. 1968~88년 17억 8500만 통의 편지가 서독에서 동독으로 발송됐고, 22억 5000만 통이 동독에서 서독으로 전달됐다. 같은 기간 6억 3100만 개의 소포가 서독에서 동독으로 건너갔고, 2억 1900만 개의 동독발(發) 소포가 서독에 배달됐다. 서독인은 횟수와 관계없이 연간 30일 범위에서 동독의 가족과 친척, 친구를 방문할 수 있었다. 

동독인도 서독에 거주하는 가족과 친척의 결혼, 문병, 조문 등과 같은 가정사에 한해 횟수와 무관하게 연간 30일 범위 안에서 방문이 가능했다. 현재 많은 탈북민들은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에게 돈을 송금하고 있다. 그것은 단지 그 가족들의 호의호식을 위해 쓰여지지 않는다. 북한 사회를 아래로부터 바꿀 수 있는 장마당의 확장에 기여하고 동시에 한류문화의 전달 통로로도 이용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와 같은 최고의 네트워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가? 우리는 여러 차례 동서독처럼 서로 도와주고 상부상조하는 일을 ‘한반도형 프라이카우프’로 실천하자고 정부에 건의하였지만 보다시피 실천되지 못하고 있다. 

남북이 합의하면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인도적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북핵 문제나 대북 제재와 무관하다. 개성에 남북연락사무소가 생겼지만 이런 문제를 논의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 통일부는 연락사무소에 대한 기능과 역할에 대해 재고할 때가 되었다. 고작 이산가족 화상상봉용 장비 반출 문제나 논의하는 수준이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3만 3200명 중 아직 생존해 있는 분이 5만 5000명이다. 남한 내 탈북자 수는 3만 명을 훨씬 넘어섰다. 이들에게 편지와 소포 교류, 상호방문을 허용해 남과 북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산가족 1세대 분들의 고향과 연고는 북한에서 소멸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당국은 이산가족 1세대들에 한 해 김 부자 정권의 계급적 원수로 지정하고 강제이주와 성분차별로 일종의 ‘소탕작전’을 전개했다. 그러나 탈북민 가족에 한 해서는 소탕하기 어려운 장애가 있다. 국경연선 일대의 인민들이 너무 많이 탈출하니 닥치는 대로 수용소에 보낼 수도 없는 ‘고충’이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생존을 위해 북핵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다. 하지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남북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북핵 문제 해결 노력은 노력대로 하면서 남북 주민 간 접촉을 늘리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그것이 남북이 합의한 판문점 공동선언과 평양 공동선언의 정신에 부합하는 길이다. 박근혜 정부 때 ‘자유민’ 개칭문제가 민주평통에서 논의되어 보고서로 청와대까지 갔지만 피드백 되지 못했다. 이제라도 문재인 정부는 탈북민들의 여론 수렴으로 새로운 작명을 해주길 기대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