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의회 격인 입법회 앞에서 12일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 참석한 한 남성이 옛 식민 종주국인 영국 국기를 흔들고 있다(출처: 뉴시스)

홍콩 의회 격인 입법회 앞에서 12일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 참석한 한 남성이 옛 식민 종주국인 영국 국기를 흔들고 있다(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온유 객원기자] 홍콩 정부의 캐리 람 행정장관은 15일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추진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이날 홍콩 시각으로 오후 3시에 기자회견을 열고 범죄인 인도 법안 개정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송환법 개정이 연기되면 대만은 물론, 중국이나 마카오, 170여개국에서 발생한 범죄자를 송환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법적인 허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15일 홍콩 캐리 람 행정장관이 홍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15일 홍콩 캐리 람 행정장관이 홍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그러나 홍콩에서는 ‘범죄인 중국 송환 법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반발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16일 100만명 이상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가 다시 열릴 예정이며, 홍콩 시민들과 시민단체들은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는 뜻으로 ‘검은 옷’을 입고 시위에 나서기로 했다.

또한 많은 홍콩 시민들이 중국의 수발을 들고 있는 캐리 람 행정장관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특히 최근 캐리 람 장관이 한 방송 인터뷰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의 정당성을 설명하며 홍콩 시민들을 ‘버릇없는 아이’에 비유하자 뿔난 어머니들 마저 거리로 나섰다.

16일 100만 홍콩 시위를 앞두고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도 격화되고 있다.

미국 의회가 최근 홍콩의 대규모 시위와 관련해 중국을 압박하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하려 하자 중국 언론들이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지난 15일 관영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음흉한 미국이 새 법안으로 홍콩을 얽매려 한다”며 “미국은 홍콩의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중국은 오히려 영국의 홍콩 통치 당시보다 민주적인 조건을 부여했다”고 주장했다.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은 홍콩 행정부가 시민들의 격한 반대에도 범죄자를 중국 본토로 송환할 수 있도록 법안 개정을 강행하려 들자, 홍콩에 대한 기존 특별대우를 해마다 재평가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해 중국을 압박하려 할 태세다.

미국은 그간 홍콩을 중국과 별개의 국가로 여기고 관세부과나 무역 제재를 하지 않고 있지만, 점차 홍콩이 중국화된다면 제재를 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홍콩=AP/뉴시스】홍콩 경찰들이 12일 입법원 근처 도로에서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쏘고 있다.
【홍콩=AP/뉴시스】홍콩 경찰들이 12일 입법원 근처 도로에서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쏘고 있다.

중국 언론은 “미국은 홍콩을 망치고 있고, 중국 본토가 홍콩에 냉정한 것으로 보이도록 꾸미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범죄인 인도 법안 개정을 연기한다고 밝힌 람 행정장관은 “이번 법안을 연기한다고 해서 법안을 철회하는 것은 아니다”며 “우리에겐 대만 살인사건과 법률상 허점이라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리는 이제 전자에는 대응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허점은 채워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법안이 철회될 수는 없다”고 전했다.

15일(현지시간) BBC는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번 홍콩 시위에 람 장관은 중국의 눈치를 보며 심의를 연기했지만 중국 정부의 호위 속에 법안을 일시적으로 보류할 것일 뿐, 홍콩의 시위가 잠잠해지면 언제라도 다시 법안 개정을 강행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관련 시위에 참가하고 있는 홍콩 시민들은 법안이 통과되면 홍콩의 기본 구조가 무너지고 홍콩이 지닌 자유가 사라질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또한 홍콩 언론들에 이어 사법권까지 중국의 통제로 넘어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사법체계의 중국화’에 결사반대하며 끝까지 홍콩 정부에 항전할 뜻을 내비쳤다.

BBC는 시위에 동참하고 있는 홍콩 시민들은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추진이 단순히 법이 개정돼 홍콩의 인권운동가나 중국 정부의 반체제 인사의 송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홍콩의 법이 중국의 사법체계에 잠식당하고 홍콩의 가치와 홍콩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며 거리로 나섰다고 분석했다.

16일에도 일반 시민들, 사회복지사, 예술가, 학생, 기업인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거리 시위가 예고되어 있다. 대학생들도 동맹 휴업에 들어갔으며 72개 고등학교 학생들도 동참 의사를 밝혔다.

시위에 동참한 한 홍콩 시민은 “이번 시위는 시진핑 정부가 홍콩을 잠식하려는 걸로 밖에 볼 수 없다”며 “우리는 중국 사법 시스템으로부터 홍콩을 보호하고 홍콩 독립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017년 한 연설에서 “중국은 앞으로도 서방국가의 헌정과 삼권분립, 사법권 독립의 길을 가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정책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홍콩 시민들은 과거의 홍콩과 같이, 지금도 사법부의 독립, 삼권분립이라는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실현하고 중국 정부로부터 벗어난 ‘독립 홍콩’을 외치고 있어 중국과는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질 예정이다.

BBC등 해외 언론들은 작금의 홍콩 사태를 놓고 가장 고민하고 있을 사람은 바로 시진핑 주석일 것이라며, 송환법을 일단 유보했지만 ‘하나의 중국’을 꿈꾸는 시진핑은 당장 미국과 홍콩 시민들에게 다음으로 어떤 전략을 써야할 지 머리가 아플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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