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천지TV=김미라·백은영 기자] 햇살이 눈부시던 5월의 어느 날
우리는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북녘 땅을 마주했다.

비록 먼발치에서 바라보았을 뿐이지만 두 눈에 들어온 저 너머는 슬프고도 아름다웠다.

북위 38도, 이북 88㎞ 지점에 위치한 이곳. 고성 통일전망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전망대다.
그만큼 분단의 현실을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짙푸른 동해와 그 위에 떠 있는 송도.

그 위로 부서지는 파도가 만들어내는 새하얀 포말.

송도를 기점으로 남한과 북한이 나뉘는 곳.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쉼 없이 오고가기를 반복하는 저 파도에게는 이념도 국경도 없을 터.

어디 이뿐이랴. 저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비행하는 새들에게 이념과 국경은 그저 허울과 허상일 뿐…

어찌 피를 나눈 동족이 서로 자유로이 왕래하지 못한단 말인가. 어느 누구의 잘못인가. 이 분단의 아픔은 이제 우리가 끝내야 할 때가 아닌가.

이 평화의 때를 만물도 아는지, 분단 66년만인 지난 4월 27일 ‘고성 DMZ 평화의 길’이 일반인에게 개방됐다. 이는 남북 정상의 합의에 따른 것으로 강원도 고성군 동해안 비무장지대(DMZ) 일대 둘레길이 통일과 평화를 염원하는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조국통일선언문’비(碑)다.

조국통일선언문은 지난 2010년 8.15광복 65주년을 기해 6.25참전용사이자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 이만희 대표가 수십만 인파 앞에서 공표한 민간 최초의 통일선언문으로 발표 당시 이만희 대표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인사 33인이 국민대표로 함께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 대한민국의 통일과 세계평화를 염원하며 새긴 한 글자, 한 글자가 그 빛을 발하고 있는 것만 같다.

분단과 전쟁의 땅에서 평화와 희망의 땅으로의 변화를 소망하는 강원도 고성.

그 평화의 길을 염원하며 내려오다 보면 고성군 죽왕면에 자리한 송지호해변을 만날 수 있다.
송지호해변은 자연이 만든 기암괴석으로 유명하다.

돌고래를 닮은 듯한 바위들이 군락을 이루고 그중 두 개의 바위는 마치 돌고래가 서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돌고래 형상의 바위들을 보고 있으니, 마치 동해 저 머언 바다로 헤엄쳐 나가려는 것도 같다.

또한 이곳에는 ‘서낭바위’로 불리는 거대한 바위가 있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그 모양이 부채를 닮았다고 해서 부채바위로도 불린다. 하지만 보는 방향과 각도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도 비춰질 수 있으니, 해석하기 나름이다.

서낭바위는 마을의 수호신인 서낭신을 모신 성황당과 관련이 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인가. 이곳을 찾은 저녁, 무속인인 듯 보이는 한 남성이 널따란 바위 위에 올라 무당춤 비슷한 동작을 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이곳은 원래 군사보호구역이었지만 2010년 일반에 개방되면서 천혜의 비경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서낭바위의 기기묘묘함을 뒤로 하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옵바위로 걸음을 옮겼다.

동해의 차가운 파도를 맞으며 서 있는 옵바위, 그리고 그 주변으로 부서져 내리는 파도가 장관을 만들어 낸다.

망망대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하얀 포말을 만들어내는 거센 파도.

파도와 바위가 만들어내는 하모니.

하늘과 바다가 서로 맞닿은 풍경은 과연 누구의 주제련가.

조물주의 조화신공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대자연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세찬 바람과 거센 파도를 이기고 억겁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낸 끝에 비경을 만들어낸 바위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치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면 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맞이하게 될 거라고.

강원도 고성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호(潟湖)인 ‘화진포 호수’가 있다.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는 생태계의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하는 곳으로 호수 주변에 병풍처럼 펼쳐진 울창한 송림이 장관을 이룬다.

여름이면 호수둘레에 해당화가 많이 피어 ‘화진포’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곳 해안길과 화진포 둘레길을 걷다보면 우리는 분단 이전과 이후 남과 북의 정치인과 유명인사들이 별장으로 이용하던 건물을 만나게 된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별장과 이기붕 부통령 별장, 화진포의 성이 지근거리에서 화진포를 내려다보고 있다. 1910년,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이승만이 선교사를 만나러 왔다 그 풍광에 반한 곳이 화진포다.

오랜 시간이 흘러 6.25때 국군이 화진포를 되찾자 선교사 집이 있던 이 자리에 별장을 짓고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이기붕 부통령 별장은 1920년대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지어진 사택으로 해방 이후 북한공산당 간부 휴양소로 사용돼 오다가 휴전 후 이기붕 부통령의 부인 박마리아가 개인별장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만한 것은 ‘화진포의 성’ 일명 김일성 별장이다.

1938년 선교사 셔우드홀 부부의 의뢰로 독일망명 건축가 베버가 건축했다. 한국전쟁 중 훼손된 건물을 2005년 3월 옛 모습으로 복원해 전시, 운영하고 있다.

1948년부터 1950년까지 2년 간 김일성과 김정숙이 이곳을 사용해 ‘김일성 별장’으로 불린다. 한국전쟁 이전 이곳이 북한 지역이었음을 말해주는 건물이다.

한편 김일성 별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1948년 8월 김정일이 그의 동생 김경희와 앉아 사진 찍었던 곳’이라는 표식과 함께 사진이 붙어 있다.

본래 하나였던 곳. 어쩌다 둘로 나뉘어 한때는 북쪽이었다가, 또 지금은 남쪽인 곳.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이곳 화진포에 북한과 남한의 지도자였던 김일성과 이승만의 별장을 함께 뒀다.

이념과 사상은 달라도, 자연의 빼어난 풍광과 만물이 주는 경이로움 앞에는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이자 이치가 아니겠는가.

마찬가지다. 남과 북의 이념도 지도자들의 잇속이 아닌, 오직 ‘민심이 천심’이라는 이치만 알았더라도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지는 않았을 터다.

그리고… 이치는 말하고 있다.

아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세상은 전쟁이 아닌 평화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쩌면 지나간 역사가 이곳 화진포에

우리들의 미래를 숨겨놓고 갔는지도 모른다.

비록 지금은 둘로 나뉘어져 있지만 곧 하나로 회복될 것을 말이다.

하조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기암절벽 위에 자란 소나무.

어찌 저 단단한 바위 위에 소나무가 뿌리를 내릴 수 있었을까.

우리네 산지 그 어디인들 아름답지 않겠는가마는

조물주가 빚어놓은 동해안의 풍광은 그 기개가 더욱 웅장한 것만 같다.

이곳에 서서 하조대를 바라보며 희망찬 미래를 상상해본다.

다가올 조국의 통일과 세계 평화를 이루는 새로운 세상의 개국공신.

그 주인공이 내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하는 즐거운 상상 말이다.

(고프로 촬영: 이상면 편집인, 사진: 백은영·이지예 기자, 자막디자인: 황금중 기자, 영상편집: 김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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