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열사가 고문치사로 사망한 서울 용산구 경찰청 인권센터(옛 대공분실)의 전경. ⓒ천지일보 2018.1.13
박종철 열사가 고문치사로 사망한 서울 용산구 경찰청 인권센터(옛 대공분실)의 전경. ⓒ천지일보 2018.1.13

1987년 민주화 현장에 예장통합‧합동‧고신 주류교단도 참여

“보수적인 기독교인조차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규탄했다”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1970년대부터 민주화 운동의 주체로 활약한 진보 기독교뿐만 아니라, 예장통합, 합동, 고신 등 주류 교단도 6월 항쟁의 현장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보수적인 기독교인조차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항하는 그리스도인’ 저자 강성호가 10일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좋은나무에 이같이 주장했다.

강성호는 “보수 교단의 교회에서도 박종철의 죽음을 추모하는 예배가 열릴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일상화된 인권 탄압과 고문이 하나님의 창조 의지에 반하는 크나큰 범죄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성호에 따르면 한국 근현대사에서 민중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장엄한 파노라마를 만들어내곤 했다. 이 가운데 기독교가 있었다.

특히 강성호는 1987년 6월 항쟁이 3.1운동, 4.19혁명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 저항의 역사 중심에 민중이 있다고 봤다.

강성호는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분노가 시발점이 된다는 면에서 6월 항쟁은 제주4․3사건과 유사하다”고 평가했다. 제주4․3사건 결과 제주도 인구 중 1/10에 해당하는 1만명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제주4․3사건이 일어나기 한 달 전, 3건의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했다. 세 명의 제주 청년들이 경찰의 무자비한 고문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는 이 사건이 제주4․3사건이 발발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그는 또 6월 항쟁이 전국적으로 동시다발적인 시위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3․1운동과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도 분석했다. 동시다발적 시위는 6월 항쟁의 길목에서 중요한 징검다리 역할을 한 2․7추도대회와 3․3평화대행진 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2․7추도대회는 박종철의 죽음에 대한 추도식을 전국 각지에서 거행한 행사였고, 故 박종철의 49재였던 3월 3일에는 3․3평화대행진이 벌어졌다. 이때 야당과 재야, 종교 세력과 학생 세력이 연대를 이뤘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경찰청 인권센터에서(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남영동 대공분실 이관식’이 열린 가운데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다 숨진 509호 앞에 박 열사를 추모하는 꽃이 놓여있다.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박종철 열사 등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았다. ⓒ천지일보 2018.12.26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경찰청 인권센터에서(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남영동 대공분실 이관식’이 열린 가운데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다 숨진 509호 앞에 박 열사를 추모하는 꽃이 놓여있다.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박종철 열사 등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았다. ⓒ천지일보 2018.12.26

이 두 대회를 통해 용기를 얻은 이들은 6․10국민대회를 통해 민주화의 주체로 두각을 나타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 역사적 분기점인 6월 항쟁 때 보수적인 교단과 교회의 참여가 나타났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또 이러한 경향이 사회참여적 복음주의 운동의 등장으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1987년 6월 항쟁 전후로 신앙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사회참여에 적극적인 복음주의자들이 나타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는 “그 안에는 다양한 결들이 있었다”며 “거칠게는 명망가와 교역자로 대변되는 ‘온건파’와 소수의 대학생들로 형성된 ‘급진파’로 나눌 수 있다”고 분류했다.

강성호는 “흥미로운 점은 사회참여적 복음주의자들이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는 근본적인 요인 중 하나로 정치 혐오를 꼽았다는 점”이라며 “역대 정권이 정치혐오를 부추겨 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도록 만들었다고 분석한 것이다. 사회참여적 복음주의자들은 정치 혐오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총동원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리스도인은 저항의 몸부림을 하며 절망과 싸우는 존재라 할 수 있다”며 “이러한 저항 정신을 잊지 않는다면, 한국 기독교가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6월 항쟁 전후로 등장한 사회참여적 복음주의자들은 역사의 커다란 변화와 마주하면서 한국 교회가 과거와 다른 새로운 실천을 요구받고 있다는 것을 절감한 이들이었다. 그야말로 ‘새로운 주체’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중요한 점은 새로운 주체의 등장이 1987년 6월 항쟁 전후로 끝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라며 “저항하는 그리스도인의 역사가 우리 시대에도 계속해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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