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시간) 홍콩의 한 시민이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행진 중 경찰에 끌려가고 있다. 자정이 넘어가며 홍콩섬 곳곳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무력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고 SCMP는 전했다(출처: 뉴시스)

9일(현지시간) 홍콩의 한 시민이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행진 중 경찰에 끌려가고 있다. 자정이 넘어가며 홍콩섬 곳곳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무력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고 SCMP는 전했다(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온유 객원기자] 시진핑 정권이 출범한 2012년 이후 홍콩에 대한 중국의 간섭은 매년 강화되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홍콩 언론에 따르면 12일(현지시간) 중국으로의 범죄인 인도 길을 여는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의 입법회(국회) 표결을 앞두고 103만명(주최 측 추산)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중국의 간섭에 홍콩 시민들이 저항하고 있다.

103만명은 740만 홍콩 인구 7명당 1명꼴이다. 영국 BBC 등 해외 언론들은 1997년 이후 최대, 홍콩 전체 역사상으로도 150만명이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지지했던 1989년 이후 최대라고 보도했다.

홍콩시민 100만명을 거리로 나오게 한 이유는 문제가 된 ‘범죄인인도법 개정안’이다.

지난해 홍콩 출신의 남성이 여자친구를 대만에서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용의자 찬통카이는 홍콩에서 체포됐다. 홍콩 현지 법에 따라 이 범죄자는 대만에서 살인죄로 기소를 해야 처벌받을 수 있다. 그러나 홍콩과 대만은 범죄인 인도 체계가 없는 상황이다. 결국, 홍콩 당국이 범죄인 인도 법안을 개정하려는 빠른 움직임을 보여왔다.

사실, 홍콩 시민들은 대만이나 뉴질랜드 등 타국가와의 ‘범죄인인도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다. 그들을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한 가장 주된 이유는 개정 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는 대상에 중국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BBC는 11일(현지시간) 현지 인권단체들의 말을 인용해 홍콩이 중국보다 인권과 표현의 자유가 훨씬 보장되고 있다며 중국으로 범죄자들의 인도가 가능해지면 비인도적 처벌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이 홍콩을 반환한 후 2047년까지 사법권 독립을 갖는 상태였지만, 오는 12일 개정안 상정이 예고되자, 홍콩 시위자들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노란 우산을 든 연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자국 행정에 대해 미국을 포함한 해외에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간섭하자, 불쾌한 심기를 드러냈다.

중국 관영 매체 차이나데일리는 사설에서 “외세가 홍콩에 혼란을 일으킨다”며 “이것은 홍콩의 정상적인 입법 활동”이라고 보도했다.

천안문 사태가 터진 지 30년이 되는 올해 홍콩에서 ‘제2의 천안문 사태’로 격화될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홍콩의 기업과 상점 수백 곳은 12일 개정 법안에 반대하기 위해 문을 닫기로 하는 등 홍콩 각계의 조직적인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홍콩 시민들이 반대하는 개정안은 중국을 포함해 대만, 마카오 등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서 특정 범죄인을 인도할 경우 허용할 수 있도록 하는 독소조항이 포함됐다. 홍콩 시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중국 정부가 반체제 인사나 홍콩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고 우려할만한 형량이나 고문, 협박 등 이 법을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저지에 나선 것이다.

그동안 홍콩 시민들이 억눌러온 ‘반중 감정’은 이번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을 두고 폭발했으며, 해외 언론들은 12일이 변수라며, 자칫 강행될 경우 홍콩 사회가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지난 1997년 영국이 홍콩의 주권을 중국에 반환하면서 중국 정부가 서구식 민주주의 체제가 익숙해진 홍콩의 자치권을 50년 동안 보장하기로 약속했지만, 홍콩 시민들은 이미 민주주의에 익숙해진 터라, 사회주의 중국의 간섭이 내키지 않고 많은 불만을 품고 있는 상황이다.

홍콩인들의 불만은 정치적인 간섭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로는 홍콩이 현재 직면한 일자리와 임금 문제도 존재한다.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1997년 이후 홍콩에서 영주권을 얻은 중국인은 7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현재 홍콩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본토 중국인들이 몰리면서, 젊은 홍콩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홍콩의 전반적인 임금 수준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중국에서 명문대를 졸업한 중국 재원들이 홍콩 회사에 취업을 하면서 고급 인력들 사이에서도 중국인과 홍콩 시민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현재 많은 홍콩 시민들은 역대급 친중인사로 불리는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의 사퇴를 주장하며,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하는 상황이다.

BBC는 캐리 람 행정장관은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며 포용 정치를 선포했지만, 이에 동의하지 않는 젊은 홍콩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며, 홍콩 시민들은 더 이상 람 장관의 말을 믿지 않으며, 굴복하지 않겠다는 뜻이 강하다고 전했다.

한 홍콩 시민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하면 홍콩의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 시행되는 개정안은 친중인사들이 장악한 홍콩의 입법회에서 12일 처리될 전망이다. 홍콩의 의회인 입법회 의석은 총 70석으로 지역구 의석 35석, 직능대표 의석 35석으로 구성된다. 직능대표 의석은 친중파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지역구 의석도 친중파가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찜찜한 홍콩 시민들뿐만 아니라 홍콩 노동운동단체, 예술계, 대학생, 환경단체 등은 민중의 힘을 보여주겠다며, 홍콩 사회 전반적으로 총력 저지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 사태는 글로벌을 리드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시작한 미국은 홍콩 사태에 홍콩 시민들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모건 오테이거스 국무부 대변인은 10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미국 정부는 홍콩 정부가 제안한 개정안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홍콩에서 벌인 평화시위는 이 법안에 대한 대중의 반대를 분명히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중국 정부는 미국의 친 홍콩 행동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겅솽 외교부 대변인은 “홍콩의 일은 순전히 중국 내의 일로 어떤 나라도 간섭할 권리가 없다”며 “중국은 미국의 무책임하고 잘못된 발언에 대해 강한 불만과 반대를 표시한다”고 밝혔다.

또한 “홍콩 정부가 범죄인 인도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확고하게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해외 언론들은 이번 홍콩 시위는 이전 시위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이전 시위가 일반적으로 단체를 통해 시민들이 참여했다면, 이번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와 자신들의 생각과 철학을 쏟아냈다고 보고 있다.

홍콩은 그동안 경제사범 등에 한해서만 중국에 범인을 인도했으나, 이번 개정안이 확정되면 정치범까지 범인 인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이번 시민들의 반대 투쟁은 당분간 가라않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2일 홍콩 입법위원회는 ‘범죄인 인도 법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이날 경찰과 시위대가 또다시 충돌해 대규모 유혈사태가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