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이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 앞서 지난 5일 제주지방경찰청은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고씨의 얼굴, 실명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출처: 연합뉴스)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이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 앞서 지난 5일 제주지방경찰청은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고씨의 얼굴, 실명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출처: 연합뉴스)

피해자 혈흔서 ‘졸피뎀’ 성분 검출
고유정, 남은 표백제 환불받기도
고씨 “시신 옆에 둬 찝찝해 환불”
인천서 피해자 유해 일부 발견
소각돼 DNA 손상 가능성 있어
범행 동기는 여전히 오리무중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전 남편 살해사건’ 피해자 강모(36)씨 혈흔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다. 피의자 고유정(36)의 살해 방법에 대한 의문점을 풀 중요한 실마리가 될 전망이다.

제주동부경찰서는 고씨의 차량에서 압수한 이불에 묻어있던 강씨의 혈액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감정한 결과 수면제의 일종인 ‘졸피뎀’ 성분이 검출됐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10일 밝혔다.

경찰은 고씨의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하는 과정에서 ‘니코틴 치사량’ 등의 단어를 검색한 것을 파악하고 이번 범죄에 약극물이 사용된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이에 경찰은 국과수에 피해자 혈흔에 대한 약독물 검사를 의뢰했지만 약물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회신을 받았다. 하지만 재차 검사를 진행했고, 수면제 성분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애초 국과수에서는 혈액이 미량이라 약독물이 검출되지 않는다는 의견이었으나, 정밀 재감정을 통해 수면제 성분이 들어있음을 밝혀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피의자 고씨에게 졸피뎀을 어떻게 구입했는지, 어떤 식으로 범행에 사용했는지 추궁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고씨는 제주에 들어가기 전날인 지난달 17일 충북의 한 병원에서 졸피뎀 성분이 든 수면제를 처방받아 해당 병원 인근 약국에서 구매했다.

고씨는 감기 등 증세로 약을 처방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후 약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등과 관련해선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 전 흉기와 청소도구 구매하는 고유정이 찍힌 폐쇄회로(CC)TV 캡처. (출처: 연합뉴스)
범행 전 흉기와 청소도구 구매하는 고유정이 찍힌 폐쇄회로(CC)TV 캡처. (출처: 연합뉴스)

고씨가 수면제 처방을 받은 근거를 확인하기 위해 경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고 졸피뎀을 처방한 병원과 약국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고씨의 범행이 알려진 직후부터 약 키 160㎝, 몸무게 50㎏의 고씨가 키 180㎝, 몸무게 80㎏의 강씨를 어떻게 살해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쏟아졌다. 이번 국과수 감정 결과에 따라 고씨가 건장한 체구의 피해자를 제압하기 위해 범행에 약물을 썼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5일 인천 서구 재활용업체에서 라면박스 3분의 1 정도 분량의 뼛조각을 발견해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에 따라 수사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경찰은 고씨가 강씨 시신 일부를 흰색 종량제봉투에 담아 버렸고, 이 봉투가 김포시 소각장에서 한 차례 소각된 후 인천 소각장 업체로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뼛조각이 500~600도를 넘는 고열에서 소각되는 과정을 거친 탓에 강씨의 DNA가 훼손됐을 확률이 높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신원 확인이 힘들 경우 다시 시신을 찾아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살해 방법은 점차 윤곽이 드러나고 있지만, 범행 동기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이와 관련해 범죄심리전문가가 범행 동기를 찾기 힘들 것이란 주장이 나왔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프로파일러인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범행 동기를 말하기 위해서는 그런 심리적인 것을 전부 공개해야 하는데 (고씨는)그걸 너무 힘들어한다”며 “가정사이니 밝히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 고씨가 범행 사흘 뒤인 지난달 28일 오후 3시 25분쯤 제주시내 한 마트에서 표백제 일부와 배수관 세정제, 박스테이프, 알루미늄 정밀 드라이버 등을 환불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이날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고씨는 태연하게 계산대에 표백제와 배수관 세정제, 알루미늄 정밀 드라이버를 꺼내 올려놨다. 그가 환불 받은 금액은 2만 6000원 정도로 알려졌다.

신상공개가 결정된 ‘전 남편 살해’ 피의자 고유정(36·여)이 6일 오후 제주 동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뒤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유치장으로 향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고씨는 지난달 25일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전 남편인 강모(36)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출처: 뉴시스)
신상공개가 결정된 ‘전 남편 살해’ 피의자 고유정(36·여)이 6일 오후 제주 동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뒤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유치장으로 향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고씨는 지난달 25일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전 남편인 강모(36)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출처: 뉴시스)

앞서 고씨는 범행 사흘 전인 지난달 22일 오후 11시쯤 제주시내 한 마트에서 칼과 표백제, 베이킹파우더, 고무장갑, 세제, 세수 대아, 청소용 솔, 먼지 제거 테이프 등을 구매했다. 당시 그는 범죄에 사용할 물품을 구입하면서 휴대전화 바코드를 제시해 포인트까지 적립하는 평온한 모습을 보였다.

경찰 조사에서 고씨는 “주거지인 충북 청주 자택에서 쓰려고 샀지만 시신 옆에 둔 물품이라 찝찝해 환불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지난달 28일 오후 11시 9분쯤 고씨가 탄 차가 완도연안여객선터미널에 빠져나오는 영상도 공개했다. 고씨는 부두에서 한참을 비상등을 켜놓고 대기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어떤 진술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씨는 지난달 25일 전 남편 강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18일 배편으로 본인 차를 끌고 제주에 들어온 고씨는 사건 당일 강씨를 만나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 입실한 후 범행을 실행에 옮겼다.

이튿날 시신을 훼손·분리한 고씨는 하루를 더 보낸 뒤 시신을 종이상자와 스티로폼 상자 등에 담은 채로 펜션을 퇴실했다. 28일엔 제주시 한 마트에서 종량제봉투 30장, 여행용 가방, 비닐장갑 등을 사고, 시신 일부를 종량제봉투에 넣고 같은 날 오후 8시 30분 출항하는 완도행 여객선에 몸을 싣고 제주를 떠났다.

경찰은 여객선 폐쇄회로(CC)TV로 고씨가 해당 여객선에서 피해자 시신이 담긴 것으로 보이는 봉지를 7분간 바다에 버리는 모습을 확인했다. 배로 이동 중에 고씨는 계속해서 범행에 사용할 목공용 전기톱을 주문해 김포 집으로 배송되도록 했다.

29일 새벽 경기도 김포시 소재 가족의 아파트에 도착한 고씨는 이틀간 시신을 다시 훼손한 뒤 31일 주거지인 충북 청주시로 향했다. 이후 경찰은 충북 청주시의 고씨 자택 인근에서 범행에 쓴 흉기 등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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