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은영,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널뛰기 1910 (사진: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8
널뛰기 1910 (사진: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8

널뛰기 1910

담장과 그 앞으로 쌓여져 있는 장작더미를 통해 널을 뛰고 있는 장소가 집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의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에는 이렇게 담벼락 가까운 곳에서 널을 뛰며, 담 너머의 세상을 구경하고는 했다. 그 시절 여인들에게 널뛰기는 놀이 그 이상의 의미였다.

널이 나란히 놓여있어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었으며, 당시 카메라의 셔터스피드나 필름의 감도 등을 감안했을 때, 널뛰는 모습과 아이들의 표정을 정확히 잡아낸 것도 주목할 만하다.

 

무동들의 무등 타기(목말 태우기) 1900 (사진: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8
무동들의 무등 타기(목말 태우기) 1900 (사진: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8

무동들의 무등 타기(목말 태우기) 1900

다양한 놀이와 재주를 펼쳤던 남사당은 부모의 허락을 받고 농가의 어린아이를 데려오거나 가출한 아이 등을 대상으로 훈련시켜 함께 유랑생활을 했다. 자기와 비슷한 체구의 아이를 어깨에 올린 채 사진에 찍힌 아이들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애달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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