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우리 사회는 악다구니, 쌍소리, 욕지거리, 거짓말로 날이 지고 샌다. 몇 년째 난리 치고 있다… 이런 어수선하고 천박한 나라가 어디 있는가… 네가 침을 뱉으면 나는 가래침을 뱉겠다는 게 요즘 세상이다.”

김훈 작가가 지난 1일 경북 안동의 한 초청강연회에서 한 말이다. 시대의 양심과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강조하는 김 작가인지라 그의 입에서 나온 칼날같은 비평의 언어는 정치비평을 업으로 하는 필자의 심장을 파헤쳤다. 그런 악다구니와 침뱉기의 주범이 바로 정치영역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의심하는 것이 필자에게도 일상의 고민이 된지 오래지만, 가끔씩 정치의 기능과 위상마저 냉소하는 버릇은 이제 ‘절망’에 이르는 병이 되고 말았다. 물론 그 치유 또한 ‘정치의 복원’을 통해 회복해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런 상처와 치유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긴장’이 필자가 선택하는 정치비평의 주된 언어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 언어는 김훈 작가의 천둥 같은 소리에 깜짝 놀라 금세 내면으로 스며들고 말았다. 자제했던, 아니 숨기고 싶었던 치부를 들켜버린 듯 달리 저항할 여력조차 없었다. 김 작가의 예리한 비평의 언어는 곧 국민의 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찢어지는 양극단의 정치

김훈 작가의 말이 맞다. 지금 우리의 것은 ‘정치’가 아니라 ‘막장’이다. ‘인간’의 것이 아니라 ‘괴물’의 소행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앞의 막말은 뒤에 오는 막말이 덮고 간다. 네 욕지거리는 나의 쌍욕이 갈음한다. 또 그 쪽의 저급함은 이 쪽의 오만함으로 화답하기 일쑤다. 하기야 이런 수준이 어디 정치영역만의 문제이겠는가. 툭하면 궤변과 거짓말, 뻔뻔함과 무치(無恥), 냉소와 저주의 싸늘한 표정이 곳곳에서 넘쳐나는 사회가 돼 버렸다.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일차원적 사회’의 전형 같은 현상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민주주의니 공화주의니 하면서 공동체의 가치를 언급하고 있으니 이쯤이면 ‘막장의 풍경’ 치고는 너무도 슬픈 일이다.

분명한 것은 ‘시대의 변화’를 ‘정치의 변화’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유럽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에 끝난 유럽의회 선거 결과가 딱 그것이다. 양당체제를 구축하며 특권을 누렸던 각국의 기득권정당이 후퇴한 반면 그들에 대항하는 ‘제3의 정치세력’이 대거 유럽의회에 진출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좌우 이념이 아니라 기득권 체제에 대항하는 반기득권 세력의 급부상이 돋보였다는 뜻이다. 물론 유럽정치의 지형변화는 이번 유럽의회 선거만이 아니다.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유럽 곳곳에서는 이미 기득권 정당체제의 후퇴와 몰락이 진행되고 있다.

어쩌면 이제는 한국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좌파와 우파라는 추상의 프레임을 만들어 놓고 끊임없이 각종 색깔을 덧칠하며 국민을 이간질하고 여론을 둘로 쪼개는 기득권 양당체제가 이제 종말을 고할 때가 됐다는 의미다. 기득권 양당체제가 그들만의 ‘과두적 정치독점’을 누리고 있는 한 민생은 더 고달파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민생이 아니라 ‘적의(敵意)’를 놓고 경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그들은 또 한통속이 돼버린다. 그것이 그들의 생존방식이다. 따라서 악다구니와 쌍소리, 욕지거리 등은 실수이거나 우연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이 아무리 진저리 쳐도 그들의 계산법에는 그것이 ‘수지맞는 장사’로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이념으로 사는 게 아니라 실용으로 살아야 한다. 좌파 정책이냐, 우파 정책이냐가 뭐가 중요한가. 아무 의미 없다. 그냥 똑같은 자원으로 좀 더 국민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면 그대로 하는 거다.”

놀랍게도 이 말은 강한 진보성을 강점으로 하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말이다. 성남시장을 거쳐 경기지사가 됐지만 그는 자신의 ‘유능함’을 채 알리기도 전에 ‘막장정치’의 한복판으로 끌려 나가 온갖 수모와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물론 최종 판결까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이재명 지사의 역량은 시간이 지날수록, 매를 맞을수록 더 단단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지사는 이런 변화를 ‘철이 들고 있다’고 표현했다. 급기야 이념과 지역으로 덧칠된 우리 기득권정치의 한계를 직시하고 있는 그의 성숙한 변화가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라 하겠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는 기득권 정치체제가 균열을 내며 아래로부터의 거대한 정치지형 변화가 촉발되고 있다. 이념을 양극단으로 하는 기득권 정치체제는 더 이상의 대안이 될 수 없으며 그 자체가 이미 ‘공공의 적’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양극단의 길이 아니라 ‘중심’으로, 대립과 분열의 길이 아니라 ‘통합’으로 가는 길이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중도통합의 정치’이다. 여기엔 ‘이념’이 폐기되고 ‘실용’이 빛을 발하게 된다. 위쪽에 있는 기득권 정치세력이 전복되고 아래에 있는 국민을 정치의 중심에 놓을 때 비로소 중도통합의 정치가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민주주의보다 오히려 그 위기가 더 심화․확산되고 있음을 숨길 수 없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언제까지 기득권 정치세력의 저질 막말에 분노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도 이제는 유럽처럼 ‘정치판’을 바꿔야 한다. 양극단의 기득권 정치세력을 좌우 양쪽으로 고립시켜내고 중도통합의 깃발을 정치의 중심에 우뚝 세워야 한다. 이것이 정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바꾸는 21세기의 시대적 과제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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