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

영화 ‘기생충’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민낯을 큰 변형 없이 담아냈다. 극과 극의 삶을 사는 두 가족의 만남은 너무나 대조적이며, 지배계층 구조 안에서 우리 사회의 상류층과 전형적인 서민의 모습을 그려냈다. 도심 속 아파트에 사는 중산층들의 이야기는 쏙 빼버리고, 직업도 학력도 없는 최하위 계층과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한 성북동 회장님 저택에 살고 있는 젊은 30대 상류층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립하며, 양극화를 극명하게 묘사했다.

영화 속에는 지금도 강북, 아현, 신림 등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반지하, 달동네, 높은 계단 등이 미장센으로 많이 등장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철저하게 헤쳐나갈 수 없는 냉혹한 신분 계급을 표현했다. 밀접해 보이지만 두 계층의 꼭지점은 사실상 현실에서는 마주치기 불가하다. ‘기생충’의 스토리텔링처럼 과외선생이라는 드라마 키워드가 들어가야, 상류사회의 세계에 하류층은 연을 닿을 수 있다.

보통 서양사회에서는 자식들이 성인이 되면 대부분 부모 곁을 떠나 독립한다. 그러나 ‘기생충’에서의 자녀들은 20대가 되어도 발을 붙일 곳이 없어 능력 없는 부모곁을 맴돈다. 그러면서 영화는 ‘가족’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구성원들의 철학, 시각, 목적을 연구하며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들을 생산해냈다.

영화는 현재 ‘기생충’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빗대어 리얼하게 그려냈다. 돈이 없어, 경제적 능력이 없어, 죽고 싶지만 죽을 수도 없고, 살기에는 너무 버겁고 힘든 사람들의 모습을 슬픔과 웃음, 희망, 후회 등으로 희비극으로 만들어버렸다. ‘기생충’은 2013년 개봉했던 송해성 감독의 영화 ‘고령화가족’과는 무능력한 가족 구성원이라는 기본적 베이스는 같지만, 생활 속의 리얼리티에 치중했던 스토리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고령화가족’은 공포와 스릴러는 배제하고 그저 사회적 무능함, 경제적 실패, 이혼 등 각자의 사연을 안고 십여 년 만에 다시 엄마 품 안으로 돌아와 동거를 하게 된 삼 남매의 이야기를 다룰 뿐이다. 무척 현실적인 드라마에 국한했을 뿐 어떠한 반전이나 무언가의 예상을 뛰어넘은 플롯은 없었다.

‘기생충’의 매력은 누구는 선이고 누구는 악이다는 정답형 스토리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대로, 누구든 선보다는 악인이 될 수 있다는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친다. 사람들은 남과 어울리며 상생하려고 노력하지만, 부득이하게 발생한 사건이나 인간관계,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연계된 운명 때문에 목표한 것이 꼬일 때가 많다. ‘기생충’에서는 반지하, 돌, 비, 인디언, 모르스 기호, 햇빛 등 미장센 요소들을 부각시키며 관객들에게 제각각 자신의 삶과 연결시켜 해석해보라는 주문을 한다.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신분 상승을 꾀하고 있으며,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은 어깨에 힘주고 다니며, 밑에 사람들을 무시한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는 사회 속에서 서로를 속고 속이며 피를 빨아먹고 사는 기생충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표현은 이제 한국사회에서는 쓰지 않는다. ‘로또’ 아니면 답이 없다고 말하는 서민들, 금수저, 흙수저로 철저하게 나눠져 있는 신분 여건에 봉착한 우리들은 가혹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있다. ‘기생충’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전혀 다른 형태로 살아가고 있는 두 집단의 대조를 통해 현 사회의 병폐를 꼬집고 있으며, 전형적인 한국사회 현실과 연결시키며 봉준호 감독 특유의 위트 코드와 재미난 블랙코미디의 의미 있는 작품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