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영한 전 대법관(왼쪽부터)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대법관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지난 2월 재판에 넘겨진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은 107일 만에 법정에서 마주하게 됐다. ⓒ천지일보 2019.5.2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영한 전 대법관(왼쪽부터)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대법관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지난 2월 재판에 넘겨진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은 107일 만에 법정에서 마주하게 됐다. ⓒ천지일보 2019.5.29

양승태 “공소장, 소설 같아”

검찰 주장 조목조목 반박

임종헌 “재판부 기피 신청”

관련 1심 재판 파행 거듭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의 핵심인물들의 재판이 속속 진행되는 가운데 이들의 재판 전략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의 공소장에 대해 ‘소설’이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재판부 기피신청까지 하면서 계속 시간을 끌고 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릴 임 전 차장에 대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속행 공판은 파행됐다. 지난달 31일 임 전 차장이 재판부 기피신청을 한 데 따른 것이다.

임 전 차장 측은 기피 신청을 내면서 “윤 부장판사가 소송 지휘권을 부당하게 남용하고 피고인의 방어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면서, 어떻게든 피고인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신념 내지 투철한 사명감에 가까운 강한 예단을 갖고 극히 부당하게 재판 진행을 해왔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사소송법 18조에 따르면 피고인은 ‘법관에게 재판의 공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때’ 등에 한해 재판부 기피신청을 할 수 있다. 기피신청이 접수되면 해당 법원은 기피신청에 대한 재판을 별도로 열어야 한다. 자동적으로 원래의 재판은 중단된다.

검찰 측도 이날 임 전 차장의 기피 신청에 대한 의견서를 냈다. 검찰은 재판부가 임 전 차장에게 발언 기회를 보장하는 등 재판 진행에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되레 임 전 차장 측이 증거 동의 번복이나 변호인 전원 사임 등으로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판단이다.

검찰의 주장대로 임 전 차장 재판은 이미 장기간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1심만 7개월째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구속된 임 전 차장은 올해 1월 정식 재판을 앞두고 임 전 차장 측 변호인들이 돌연 전원 사임했다. 방어권 보장이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이후에도 검찰이 제시한 증거들의 능력을 의심하며 지속적인 재판 지연을 펼치고 있다는 게 검찰 시각이다. 결국 검찰은 1심 구속기간 만료가 다가오자 영장을 추가 발부받기도 했다. 임 전 차장 측은 이에 강력 반발하는 일도 있었다.

형사소송법 제20조에 따르면 기피신청이 소송의 지연을 목적으로 한 것이 명백할 땐 신청을 기각할 수 있다. 법원이 임 전 차장 측 기피신청이 이와 같다고 판단한다면 재판부 교체는 없을 전망이다. 다만 항고와 재항고 등 불복 절차가 있기에 재판 일정은 더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사법 농단’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사법 농단’ 관련 2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3.19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사법 농단’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사법 농단’ 관련 2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3.19

양 전 대법원장은 원색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으며 검찰을 직접 비판하고 있다. 아예 공소장 자체가 문제투성이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정식재판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25분 동안 직접 검찰을 맹렬히 비난했다. 그는 “검찰이 말한 공소사실의 모든 것은 근거가 없는 것이고, 어떤 것은 정말 소설의 픽션 같은 이야기”라며 “모든 것을 부인한다”고 말했다.

이어 “법관 생활 42년을 했지만 이런 공소장은 처음 본다”며 “법률가가 쓴 법률 문서라기보다 소설가가 미숙한 법률 자문을 받아서 한 편의 소설을 쓴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라고 비아냥댔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후에도 본인이 생각하는 검찰 측 문제점을 비판하기 위해 갖가지 비유를 동원했다. 그는 재판 거래에 대해 공소장에 재판거래 내용이 온데간데없다면서 “용은커녕 뱀도 제대로 그리지 못한 격”이라고 주장하거나, ‘판사 블랙리스트’에 대해선 “통상적인 인사를 갖고 블랙리스트로 포장하고 있다”며 “포장만 근사하게 해서 내놓는 상품”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면서 “권투를 하는데 상대방의 눈을 가리는 격”이라거나, 검찰이 심리를 재촉하는 건 “축구장에 골대도 안 세우고 경기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검찰은 거세게 반발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재판부가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현재 본안 재판부가 보석 신청을 기각해 구속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두 재판부가 범죄혐의가 충분히 소명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그럼에도 해당 범죄사실에 대해 ‘소설’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검찰뿐 아니라 재판부까지 모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들도 검찰의 말 하나하나를 문제 삼으며 공방을 펼치는 통에 재판이 길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평생 법을 다룬 법관들이 자신의 지식을 정상적인 재판을 방해하는 데 쓰고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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