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전 동의대 철학과 교수

ⓒ천지일보 2019.6.3

하이데거(Heidegger)의 말을 빌리자면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Die Sprache ist das Haus des Seins).’ 즉 언어는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장소(Ort)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 존재는 그 언어 안에서 거주(Wohnen)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언어 사용은 그 존재의 사유방식을 알 수 있는 척도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요즘 연이은 정치권의 막말 퍼레이드를 보면 정치인들이 상대 진영 또는 국민을 대하는 의식의 흐름이 어떠한지를 가늠할 수 있다.

사실 정치권의 막말이 하루 이틀 있어 온 건 아니지만 올해 유독 그 양태가 심해 보인다. 아마도 올 한해 정치권에서 쏟아낸 막말만 모아 엮어도 막말 사전 한 권 분량은 충분히 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 대통령을 향한 보수야당의 막말은 그 끝이 어디까지인지 모를 만큼 도를 한참 넘어서고 있다.

당의 대표와 원내대표 그리고 최고위원급 의원들까지 서로 경쟁하듯 막말을 쏟아놓더니 이제는 정책위의장까지 '김정은이 문재인보다 낫다'라는 역대급 막말을 내뱉었다. 오죽했으면 ‘대통령을 김정은의 대변인’이라고 막말을 퍼부었던 자당의 대표마저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대신 사과까지 했을까.

사실 ‘말재주’는 정치인의 전문 영역이다. 시대정신을 담은 강력한 연설, 혹은 말 한마디는 사람을 감동시키고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하다.

링컨의 그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나 케네디의 대통령 취임식 연설 “나라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를 묻기 전에 먼저 자신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라” 등은 시대를 관통하고 대중을 움직인 대표적인 연설이다.

암울하던 군사독재시절 이 땅의 양심들을 흔들어 깨웠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또는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 그러면 대통령 자격이 있습니까”라며 색깔론에 맞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자후 역시 시대를 관통하는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작금의 우리 정치권에는 영혼을 울리는 명언은 없고 역사의식도 품격도 찾아볼 수 없는 기교뿐인 말재주와 말장난, 대중의 말초적 감각을 자극하는 막말만 난무하고 있다. 정치권 자체가 어느덧 막말 정치인이 살아가기에 최적의 조건을 두루 갖춘 환경이 조성된 탓이다.

그리고 이런 정치 생태계를 숙주 삼아 생존해온 정치인은 막말을 통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다는 ‘노하우’를 터득한다.

‘정치인은 자신의 부고장만 아니라면 무조건 이름을 알려야 한다’는 정치권 속설처럼 가만히 있는 것보다 ‘노이즈 마케팅’이라도 하는게 인지도 올리는데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비난이야 시간이 흐르면 잊혀질 것이고 인지도만 상승하면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막말로 정치적 이득을 누릴수록 우리 사회가 더욱 황폐해지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우리 국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이 문제다. 국민은 더 깊은 정치혐오에 빠지고, 막말을 정치인의 전매특허쯤으로 여기게 되면서 면죄부를 발급한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막말 면허’를 획득하고 서로 경쟁적으로 막말을 양산하며 이러한 양상이 무한 반복된다.

우리는 이제 이 악의 고리를 끊어내고 건강한 정치 생태계를 가꾸어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의 막말을 진영논리로 정당화하거나 쾌감을 느끼며 부추겨선 안 된다. 정치인의 막말을 반드시 기억하고, 심판하고, 낙선시켜야 한다.

지금으로서 가장 확실한 막말 금지법은 기억하고, 심판하는 것이다. 그래야 '적당히 짖어대다 알아서 조용해질 개, 돼지 같은 대중'으로 취급받거나 '좌파독재'의 국민이라는 모욕 정도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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