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북송 인종시대의 재상 여이간(呂夷簡)은 권력을 장악하자, 많은 인재들을 해쳤다. 정직과 재능을 겸비한 범중엄(范仲淹)은 거침이 없이 고관들을 비판했다. 범중엄은 고관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여이간이 꾸준히 자기의 측근들을 발탁하자, 범중엄이 ‘백관도(百官圖)’를 인종에게 보여주며 순서에 따라 승진하는 것이 정상인데 지금은 불공정하게 처리되고 있으며, 인사를 재상이 독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불쾌했던 여이간은 인종에게 범중엄은 사실과 다른 말을 하는 유명무실한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범중엄은 다시 4편의 평론을 지어 시정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고사를 예로 들었다.

“한성제는 장우(張禹)를 총애하고, 국구의 가족을 의심하지 않았다가 왕망(王莽)의 난을 초래했습니다. 지금 조정에 장우와 같은 인물이 폐하의 가법을 해치고 있을까 두렵습니다.”

여이간과 범중엄의 논쟁이 계속되었다. 범중엄의 언사는 혹독했다. 결국 그는 요주지부로 좌천되었다. 여이간의 당원인 시어사 한진(韓縝)이 범중엄의 당원 명단을 조당에 비치하고 백관들에게 직분을 넘지 말라는 것을 밝히라고 주청했다. 인종이 허락했다. 친구들까지도 감히 범중엄을 송별하지 못했다. 이현(李絃)과 왕질(王質)이 술을 준비하여 송별하면서 저녁때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누군가 좌천된 범중엄을 송별했다고 질책하자, 왕질은 그와 붕당이 된다면 얼마나 다행이냐고 말했다. 비서승 여정(餘靖)이 주청했다.

“범중엄에게는 오히려 상을 주어야 하는데도 더 심한 질책을 가하십니다. 신하의 의견이 부합되지 않으면 폐하께서는 듣지 않으면 그만이지, 어떻게 죄를 묻습니까? 서한시대 급암(汲黯)은 평진후 공손홍(公孫弘)이 간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오의 장소(張昭)는 노숙(魯肅)이 어려서부터 거칠게 살아서 조심스럽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한무제와 손권은 그들을 벌하지 않았습니다.”

여정까지도 좌천되었다. 태자중윤 윤수(尹洙)도 범중엄을 변호했다가 좌천되었다.

“범중엄은 정직하고 성실합니다. 사적으로는 신의 스승이자 친구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신도 범중엄의 당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범중엄이 사당을 결성한 죄를 범했다면, 신도 처벌받아야 합니다. 빨리 저를 내쫓아서 국가의 대법을 밝히십시오.”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자 경륜가였던 구양수(歐陽修)도 범중엄의 좌천은 잘못이라고 반발했다. 고약눌(高若訥)은 구양수의 친구였다. 그가 친구를 등지고 구양수를 고발했다.

“범중엄이 좌천된 후 신하들은 조당에 걸어둔 칙령에 따라 그를 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구양수가 신에게 범중엄은 공명정대하고, 고금에 통달하여 조정의 누구도 그와 비교할 수 없다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또 신이 범중엄의 무고를 변론하지 않는다고 꾸짖었습니다. 사대부들을 만날 때나 조정을 출입할 때 간관으로 자칭하며 신하에게 인간으로서의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또 천자와 재상이 뜻이 맞지 않다고 현명한 사람을 쫓아냈는데도 신이 감히 진언하지 않았다고 비난했습니다. 신은 현인이라면 치리에 따라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폐하께서 현인과 마음이 맞지 않아 좌천시켰다면 신이 간쟁해야 마땅합니다. 범중엄은 얼마 전 확실하고 솔직한 말로 빨리 승진했습니다. 그렇다고 방자한 망언을 할 권리는 없습니다. 신은 폐하께서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현인을 배척한다는 말을 들을까 두렵습니다. 빨리 구양수를 경고하여 사람들이 현혹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가 바친 구양수의 편지에는 고약눌에 대한 분노가 들어 있었다. 구양수도 좌천되었다. 다툼이 혼전의 양상이 되면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하지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의 피해를 감수하고 누군가를 변론하는 것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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