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의 대표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흑백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알랭 레네)>은 혼돈의 느낌이 강한 음악과 함께 앵글에서 얼굴이 벗어난 두 남녀가 껴안은 채 시작된다. 배경음악과 함께 그들의 말하는 것은 보통 사랑을 나누면서 즐기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히로시마 원폭의 결과에 대해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영화는 기승전결을 벗어나 의식의 흐름을 좇는 전개를 채택한 대표적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이다. 흑백영화지만 앵글 처리 등 전체적으로 ‘시크’하며, ‘세련’됐다.

남자는 여자가 하는 이야기 전부를 부정하지만, 여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확신한다. 그들의 말에 따라 화면은 원폭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일본인들을 비춘다. 반복되는 무의미한 대화 속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이들은 상상할 수 있으리라. 바로 얼굴이 화면에 비춰지지 않았지만 일본인 남자와 프랑스인 여자라는 점을 말이다.

건축가인 남자, 영화배우인 여자. 그 둘의 공통점이 있다면 인류의 비극,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는 것이다. 세계대전인 만큼 전쟁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지대하다. 물론 전반부에서만 언급되는 이야기이다. 점점 갈수록 앵글은 그들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남자는 여자의 이야기를 군말 없이 듣는다. 여자에 대해 알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첫사랑인 독일인과 히로시마에서 만난 일본인 사이에서 광적일 정도로 사랑의 갈등을 겪는다. 첫사랑은 그녀에게서 신과 같은 존재다. 그래서 더욱더 그녀에게 있어서 이런 갈등은 괴로운 것이다.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이한 점은 여자가 첫사랑을 회상할 때, 히로시마에서 만난 일본인이 마치 여자의 첫사랑 독일인인 것처럼 이따금씩 “그 때 나는 죽어 있었나요?”와 같은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이 시퀀스에서 독일인의 혼령이 일본인에게 전이된 것처럼 보이나 그저 여자 이야기에 몰입해 마치 자신이 그 첫사랑인 것처럼 말했을 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와 독일은 지독한 악연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독일인 병사를 사랑했고, 그로인해 한동안 주민들에게 지탄을 받은 기억이 있다. 일본 역시 동아시아를 침략한 대부분 나라의 적군이었고 독일과 같이 패전국가다. 이러한 이유로 여자는 일본 히로시마에 가서, 일본인을 보고 첫사랑 독일인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 마지막 장면인데 여자는 남자를 ‘히로시마’ 남자는 여자를 ‘느베르’라고 상대방의 고향 이름을 부른다. 한 번도 실명이 거론되지 않은 채 영화는 끝난다.

느베르가 여자의 삶에 그리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대부분의 꿈의 배경이 느베르라고 말한다. 그 곳에서 여자의 삶이 천국이었는지, 지옥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남자는 마치 동화이야기를 듣는 마냥 호기심과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여자의 과거사를 듣는다. 이 둘을 보면서 위태위태한 냉정 속에서 열정적인 사랑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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