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의 문화 찔러보기] 아이를 때리는 것은 한울님을 치는 것
[전경우의 문화 찔러보기] 아이를 때리는 것은 한울님을 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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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동학을 세운 최제우(1824~1864)는 스무 살에 도(道)를 찾겠다며 집을 나섰다. 출가구도(出家求道)한 것이다. 나라에 괴질이 돌고 민심이 흉흉하다고 하여 직접 눈으로 살펴 현실을 알고자 했던 것이다. 일 년 가까이 세상을 떠돌다 돌아와 보니 집안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아내는 친정으로 가 버리고 없었다. 어찌하여 다시 아내와 살았지만, 물려받은 재산을 탕진하고 세상을 떠도는 남편 때문에 아내는 한숨으로 세월을 보냈다.

스무 세 살에 다시 출가한 최제우는 가난한 사람과 부자, 배운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 어른과 아이,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며 동학을 창시했다. 그런데 동학의 첫 신자가 바로 아내 박 씨였다. 그렇게 속을 썩이던 남편이었지만 아내 박 씨는 무슨 영문에서인지 동학의 첫 신도가 되었다. 몇 번이나 물에 빠져 죽으려 했던 박 씨였지만 결국 남편의 뜻을 따라 나섰던 것이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최제우는 포덕(布德)을 통해 가정과 아내의 소중함에 대해 많이 가르쳤다. 가정의 화목이야말로 세상의 근본이며 도(道)가 통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은 부인에게 달렸다고 강조하였다. 여성들이 가정에서는 물론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도 남자와 다름없이 자신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여성의 개가(改嫁)를 금지하는 제도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신방도 치러보지 못하고 남편이 죽었을지라도 개가하지 못하였고, 설사 재혼하여 자식을 낳아도 그 자식은 출세를 못하던 시절이었다.

동학의 2대 교주인 최시형도 그 뜻을 이어받아 여성의 지위와 역할을 중요하게 여겼다. 부부가 화순함은 우리 도(道)의 초보이니 도의 통함과 통하지 못함이 도무지 내외의 화평과 화평하지 못함에 있나니, 내외가 화평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화평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 집에 불난 것은 끄지 않고 다른 집의 불을 끄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하였다. 또 부인이 지아비의 말을 좇지 아니하면 정성을 다하여 경배하라고도 하였다.

동학에서는 사람이 하늘, 즉 인시천(人是天)이라 하여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평등하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집안 모든 사람을 한울 같이 공경 하여라, 며느리를 사랑 하여라, 노예를 자식같이 사랑 하여라, 말이나 소 같은 가축을 학대하지 마라, 손님이 오면 한울님이 오셨다 하고 모시라고 하였다. 또 어린아이를 때리지 마라고 강조하였다. 아이를 때리는 것은 하늘을 치는 것이라고 하였다.

엄격한 유교적 서열문화에 따라 상대적 약자였던 여성과 어린 아이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강조하고 실천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백년도 더 된 시절의 동학 교리 덕분인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 하여 남편이 부르면 아내가 따른다고 하였지만, 지금은 부창부수(婦唱夫隨), 아내가 부르면 남편이 따라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제 자식이라도 부모가 체벌을 못하게 하는 법이 들어선다고 한다. 부모가 자식 꿀밤도 못 때리는 세상이냐는 푸념이 나오기도 하지만,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으니, 때리지 않고 가르칠 수 있으면 더 없으면 좋겠다. 몹시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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