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우리 민족에게 일본과의 관계는 항상 ‘과거의 안경’으로만 투시되는 콤플렉스가 있다. 식민 지배와 종군 위안부, 그리고 탄압과 수탈의 패러다임이 거의 전부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우리는 일본에 다녀오는 것을 자랑하고 일본의 앞선 문화와 음식 등에 탄복한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의 과거와 현재, 특히 미래에 대해 동북아 공동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재 고찰해야 할 것이다.

과연 지금처럼 최상의 한·일 관계가 절실한 때가 또 있었는가. 지금처럼 한·일 관계가 나락에서 허우적거리는 때도 없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일본인의 반한 감정을 선동·이용해, 장기 집권하면서 평화헌법의 전쟁 금지 조항 9조 삭제를 우익 정치인으로서의 최종 목표로 추구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성냥불 하나만 던져도 활활 타오르는 한국인의 반일 감정을 포기할 수 없는 정치적 자산으로 끌어안고 당분간 가려는 것 같다. 문 대통령은 지지자들에게 가시적 성과를 내는 대북 정책과 성과가 애매한 사회복지 정책을 제외하고, 반일 정책이 좋아서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계산이라도 해 봤는가. 북한이라는 도전적 존재에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한·미·일 삼각관계를 생각할 때 이런 외교적·전략적 비정상(anomaly)은 유례가 드물고 이해할 수도 없다. 아베 총리는 한국과의 관계 복원 없이 일본이 미국 쇠퇴의 공백을 메우는 동아시아 지역 패권국이 되는 걸 꿈도 꿀 수 없다. ‘미국의 속국’이라 불리는 일본, ‘트럼프의 푸들’(poodle)이라 불리는 아베 총리의 참여 없는 한반도 평화는 환상임을 문 대통령은 인정해야 한다. 직언하는 참모도 없어 보인다. 

한·일 관계 개선 요구가 동맹국으로부터도 나오고 있다. 일본 언론의 어제 보도에 따르면 지난 4월 한·미 정상회담 때 트럼프 미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일 관계를 개선하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한·일 사이의 갈등이 미국의 큰 걱정거리로 확대된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우려는 한반도 안보의 기반인 한·미·일 협력체계의 훼손 가능성이다. 그동안 한·일은 영토·위안부 등의 갈등에도 안보만은 협력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의 일제 강제노역 보상 판결에 이어 일본 초계기 레이더 조사와 욱일기 게양 거부 사건까지 터지면서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 양국 군사협력은 파탄지경이다. 앞으로 우발적인 군사충돌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중 무역전쟁 격화로 미국은 한·미·일 연대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에선 미·중 사태를 신냉전으로까지 보고 있다. 미·일의 인도·태평양전략에 한국의 참여를 일도양단하라는 압력은 거세질 전망이다. 동맹의 축에 서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정부는 손 놓고 있을 시간이 없다. 이낙연 총리가 지난해 10월 민관합동위원회를 설치해 한·일 갈등 타개책을 논의한다고 했지만 반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타조가 위급하면 모래에 머리만 파묻는 ‘현실 도피’와 다름없다. 우리에겐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역할이 필수다. 일본에 있는 유엔사 후방기지는 전쟁수행의 핵심이다. 그래서 미국은 일본을 한반도 방어의 안전판이라 한다. 북핵 해결에도 일본 협조는 중요하다.

정부는 한·일 관계 회복에 적극 나서야 한다. 양국 국민을 대상으로 공공외교를 펼치고, 상황별 대비책도 마련해야 한다. 이달 말 싱가포르 상그릴라 한·일 국방장관회담과 다음 달 G20 정상회담이 좋은 기회다.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로 나빠진 양국 관계를 대승적으로 풀기 위한 ‘김대중 대통령-오부치 일본 총리의 공동선언(1998년)’ 정신을 되새겨 봐야 할 때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아베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제조건 없는 만남을 선언해 놓은 상태이다. 북한의 시장이 일본에 넘어간다는 상상을 왜 이 정부는 하지 않고 있는가. 과연 이 정부 지도자들에게는 그런 계산도 없단 말인가. 그것이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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