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문화칼럼]  13세 신부 영화 상영금지
[이재준 문화칼럼]  13세 신부 영화 상영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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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옛 봉건사회에서 혼례는 몇 살부터 가능했을까. 조선 세종 때에 남녀 혼인의 나이를 어명으로 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예조에서 임금에게 다음과 같이 주청하고 윤허를 받는다. ‘혼인의 연한을 정하지 않은 까닭에 세간에서 혼인을 서둘지 않아 시기를 잃게까지 됩니다. 이는 다만 음양(陰陽)의 화합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여자들이 혹은 남에게 몸을 더럽히게까지 되어 풍속이 아름답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성들은 나이 14세에서 20세 안에 혼인하도록 하고, 이유 없이 이 기한 내에 혼인하지 않으면 혼주(婚主)를 처벌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고전 춘향전의 주인공들은 모두 이팔청춘 16세였다. 이 나이가 되면 사리를 분별 할 줄 알고 남녀사이를 안다고 생각한 것이다. 영조 계비 정순왕후는 15세에 시집을 왔다. 세종의 유시인 14세 이상을 지킨 것으로 이때 부군 영조는 66세였다. 

전국 관아에 딸린 기방(妓房)에는 나이어린 기생도 생겨났다. 12~13세의 기생들이 관장을 상대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올바른 생각을 가진 지식인들은 어린 기생과 상대하는 것을 피했다.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광좌(李光佐)가 함경도관찰사로서 안변을 순시할 때 일이다. 저녁에 잠을 자는데 나이어린 기생이 수청을 든다고 들어왔다. 이광좌는 차마 어린 기생과 동침을 할 수 없었다. 그는 기둥에 선을 그으면서 ‘키가 여기 닿을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 그리고 훗날을 기약하는 징표로 부채를 건넸다. 

나이 어린 기생은 약속을 믿고 절개를 지키고 살았다. 몇 년이 지나 어느 날 안변의 관기가 이광좌에게 만나 뵙기를 청했다. 그녀는 몇 해 전 인연을 맺은 기생의 언니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동생이 매일 대감을 그리다가 죽으면서 부채를 드리라고 해서 이렇게 갖고 왔다’고 말했다. 부채에는 기생의 애절한 시가 적혀있었다.  

‘이별할 적 넋이 사라질 듯 슬펐다오/ 상자 속에 담긴 둥근 부채 한번 보소서/ 절반은 맑은 향기요 절반은 눈물입니다 .’ 이광좌는 측은하게 여겨 비용을 넉넉히 주어 장례를 잘 치르라고 당부했다.

율곡 이이(栗谷 李珥)도 지방을 순시했을 때 비슷한 일을 경험한다. 지방 관장들이 율곡이 묵는 방에 기생을 들여보냈다. 그런데 그 기생의 나이가 너무 어렸다. 율곡은 기생과 동침 할 수 없어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네가 나이가 들면 그때 마음을 주마’라고 했다. 몇 년 후 그 지방을 가는데 기생이 제법 성숙한 모습으로 수청을 들고자 찾아왔다. 그러나 율곡은 ‘네가 나이가 아직 차지 않았으니 다음을 기약하자’고 끝내 잠자리를 피했다.  

13세 신부를 소재로 한 베트남 독립영화 ‘셋째 부인(The Third Wife)’이 미성년자 배우의 성행위 묘사로 상영이 금지됐다고 한다. ‘셋째 부인’은 19세기 베트남을 배경으로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 이 영화가 미성년 배우를 등장시켜 성행위까지 묘사, 관음증을 노렸다면 예술의 본질을 넘어선 것이다. 

동아시아에는 지참금만 있으면 미성년자를 신부로 데려갈 수 있는 빈곤국이 많다. 오랜 풍속이라고 하지만 소녀들이 받는 충격과 상처는 심각하다. 과거 고난의 행군 때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으로 간 어린 소녀들은 성의 노리개로 후유증이 지금도 나타나고 있다.  

미성년자를 이용한 인터넷의 불법사이트는 독버섯처럼 확산되고 있다. 얼마 전 친모와 계부에게 무참하게 살해 된 중학생 소녀의 비극도 성추행이 발단이 됐다. 소녀는 이혼한 친부와 친모사이를 오가면서 마음 놓고 기댈 대가 없었다고 한다. 그늘진 곳에서 신음하는 미성년자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국가의 철저한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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