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당정청회의 개최 직전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과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간 사담이 외부에 알려질 때만 해도 문재인 정부의 핵심인사들이 보는 공무원의 ‘복지부동’ 판단이 편견이라는 공직사회의 불평이 뒤따랐다. 공직자들은 김수현 실장이 말한 공무원 행태가 (집권) “2년차가 아니라 집권 4년차 같다”는 말에 부정하면서 나름대로 일하고 있다는 항변을 했던바, 이번에 발생한 주미대사관 소속 외교관의 3급비밀 문서 유출사건을 접하게 되니 공직사회가 복지부동에 더해 스스럼없이 일탈행위를 하고 있음은 레임덕 현상마저 의심할 정도다. 

외교부에서는 감사관을 미국 현지로 급파해 사건의 전말을 조사하고 있는바 외교기밀을 유출한 당사자는 주미 한국대사관 3급 참사관 K씨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내용으로는 K씨가 자신의 고등학교 선배인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에게 3급외교 비밀문서에 속하는 내용을 전달했음을 시인했다는 것이다. 외교부의 3급공무원이 중요한 기밀문서, 그것도 한반도 정세와 대북관계 등 현안이 담겨질 수밖에 없는 ‘한미 정상 간 전화통화’ 내용을 야당의원에게 전달한 것은 그 내용이 공개될 게 뻔한 일임에도 의도를 갖고 한 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주미 한국대사관 3급 참사관 K씨는 청와대 근무 경력이 있고, 외교관 생활이 20년 넘은 직업관료다. 강경화 장관조차도 부하인 K씨로 두고, “능력이나 직업윤리와 의식에 있어서 상당한 수준의 사람이라고 장관으로서 생각했다”고 말할 정도로 신뢰받는 베테랑 공직자였다. 그러한 그가 국가기밀이 유출됐을 경우 국가적 명예 실추와 함께 자신에게 법적 책임이 돌아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텐데도 이를 감행한데에는 본인만의 일탈행위로 치부할 수 없는 일이다.

외교부는 다른 중앙행정기관과는 달리 외교, 국제경제협력외교 등 비교적 루틴화된 전문행정을 다루는 정부조직으로 ‘신사 부처’로 정평나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전문외교를 다루는 부처라서 쇄신에 있어서는 무풍지대나 다름없었다. 그러다보니 최근에 대통령 방문국의 국명 오기, 회담장에 구겨진 태극기가 걸리는 등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졌고 급기야 초대형 보안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기강 해이가 도를 넘은 외교부 공무원의 일탈이 전체 공직사회로 전이되지는 않겠지만 이쯤 되면 공무원에 대한 국민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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