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아동학대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정부, ‘친권자 징계권’ 삭제 검토

“자녀 꿀밤도 못 때리나” 우려

법조인들 “정당한 훈육은 가능”

법무부 “다양한 의견수렴 거칠 것”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정부가 민법에 규정된 친권자의 ‘징계권’의 용어 개정에 착수한다. 사실상 징계권이 부모의 체벌을 허용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점을 막고자 하는 취지다. 이에 앞으로는 이른바 ‘사랑의 매’조차도 할 수 없는 것인지 궁금해 하는 시선이 많다. 과연 부모는 어떠한 훈육도 하지 못하는 것일까?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인 23일 국무총리 주재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제안한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심의·발표했다. 정부는 ‘아동이 행복한 나라’ 라는 비전 아래 보호, 인권 및 참여, 건강, 놀이 등 4개 영역에서 10대 핵심과제를 선정해 정책을 발표했다.

◆왜 ‘친권자 징계권’ 조항을 바꾸려 하나요?

이 중 민법상 규정된 친권자의 징계권의 범위에서 체벌을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게 법무부 설명이다. 정부는 왜 해당 규정의 변경을 검토하는 것일까?

현재 민법 제915조엔 ‘친권자는 자녀를 보호·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아동에게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고 학대했을 경우 아동복지법 등에 따라 처벌을 받지만, 친권자의 경우 이 민법상 징계권 때문에 형이 감경되거나 무죄가 선고되는 상황이 종종 나타났다. 해당 조항을 악용한 셈이다.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관계자는 “아동학대 범죄가 벌어졌을 때 (가해자들의) 주된 변명이 ‘내가 내 아이를 체벌할 권리가 있지 않냐’고 말하는 것”이라며 “민법 915조 때문에 마치 처벌이 제한 없이 가능하다고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고, 그에 따라 법 조항 검토에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포용국가 아동정책'과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포용국가 아동정책'과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법무법인 하나의 강신업 변호사는 “현재 아동복지법으로 체벌을 금지하는 상황에서 법끼리 상충이 일어나는 점을 해결하면서, 1960년에 생긴 친권자 징계권 조항이 처벌보단 다른 방식의 교육을 지향하는 사회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하니 현실에 맞게 조정하자는 취지라고 본다”고 정부 발표의 의미를 평가했다.

앞서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도 한국 정부에 가정, 학교 등 모든 기관에서 체벌을 금지하도록 법률 개정 등을 권고한 바 있다.

만약 정부 계획대로 법이 개정된다면 더 이상 아이를 폭행·학대하고도 민법을 빌미삼아 ‘내 아이니까 때려도 된다’는 식으로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시도는 줄어들 전망이다.

◆이젠 자녀를 어떻게 훈육해야 하나요?

그럼 앞으로 부모가 자녀에게 체벌을 할 경우 모두 처벌 되는 것일까? 그렇진 않다.

법무심의관실 관계자는 “아동복지법에 따른 범죄구성요건에 해당돼도 필요한 범위에 따른 훈육은 위법성이 조각된다”며 “생활이 불량한 자녀의 용돈을 줄이고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것부터 아이들이 식당에서 뛰어다니지 못하도록 붙잡는 식의 훈육이 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강 변호사는 “징계권 조항이 삭제된다고 해서 부모가 ‘꿀밤 한 대’도 못하게 한다는 그런 의미는 아니다”라며 “필요한 체벌이라면 정당행위(형법 제20조)로 볼 수 있다. 친자의 징계권이 수정된다고 훈육을 못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법 개정 이후 아동 학대에 대한 처벌은 어떤 변화가 있을까?

이에 대해 대검찰청 여성·아동·소년 전문연구관을 지낸 이승혜 변호사는 “기존에도 폭행이나 아동학대로 경찰 조사를 받은 부모 중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라고 판단돼 기소유예라던가 보호사건으로 송치된 경우가 많다”며 “형사 처분의 측면에선 친권자 징계권 조항이 삭제된다고 해서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동학대 신고건수 및 체벌에 대한 국민 인식. (제공: 보건복지부) ⓒ천지일보 2019.5.24
아동학대 신고건수 및 체벌에 대한 국민 인식. (제공: 보건복지부) ⓒ천지일보 2019.5.24

◆어디까지가 ‘체벌’인가요?

다만 아동복지법에서도 어디까지가 체벌인지 명확하게 규정하진 않았다. 이 때문에 체벌의 범위를 어떻게 정하느냐를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체벌’이 법률용어도 아닌 탓에 법적인 해석을 놓고 많은 논란이 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려를 보내는 학부모들도 뚜렷한 조항이 없는 부분을 가장 걱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변호사는 “체벌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으면 판·검사의 개인 가치관에 의해 처분이 좌우될 수 있다”며 “법원과 검찰이 그 동안의 기소유예나 처분을 면했던 사례를 모아 기준을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법무심의관 관계자는 “학계 등 전문가의 의견을 폭 넓게 들어보고 다양한 방식으로 의견 수렴을 할 것”이라며 위원회 등을 구성해 논의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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