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범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보이스피싱 범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검사 사칭’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 재산·정신 피해 호소

“알바 개념 ‘전달책’만 잡혀”

[천지일보=김빛이나, 홍수영 기자] “집안에 어려움을 돕기 위해 밤낮 일하면서 노력해왔는데…. 갑자기 걸려온 전화 한 통이 제 인생을 송두리째 엉망으로 만들어놨어요….”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공부를 마치고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사회초년생’ 고모(27)씨는 2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검사로부터 전화를 받았고 자신의 인적사항이 적힌 사건 공문 등 서류를 이메일로 받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검사는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조직원이었다. 검사 사칭에 속은 고씨는 그 동안 애써 모았던 3600만원을 일순간에 잃고 말았다.

최근 보이스피싱이 다시 기승을 부리며 사회적 약자의 취약함을 파고들고 있다. 피해자들은 금전적인 피해는 물론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것에 대한 정신적인 충격까지 받고 고통을 호소한다. 이 같이 피해가 늘고 있지만 보이스피싱 조직의 ‘우두머리’는 잡히지 않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조계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범죄는 주로 중국 등 해외에 거주하는 ‘피싱조직’과 국내 조직이 공모해 이뤄진다. 두 조직은 위쳇(wechat), 카카오톡 등의 메신저를 통해 연락하면서 각자 역할분담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국내 피해자들을 상대로 편취한 피해금을 해외로 빼돌려 피해회복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은 주로 ▲중국 등 해외에서 콜센터를 운영하면서 전화·인터넷 등으로 피해자를 기망해 입금 등을 유도하는 피싱조직 ▲국내에서 활동하는 조직원을 모집해 교육하고 지시하는 관리책(모집책) ▲피해자를 직접 만나 금융감독원 등의 직원을 사칭해 금전을 직접 편취하는 대면책 ▲피해금을 인출해 송금책에게 전달하는 전달책(인출책) ▲피해금을 중국 등 피싱조직에 송금하는 송금책 등으로 구성된다.

검찰. ⓒ천지일보
검찰청. ⓒ천지일보

◆1명에게 당한 피해액만 1억 3천만원

1000여만원의 피해를 본 유모씨도 이 같은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에 당했다. 수원지방검찰청에 따르면 그는 지난 2월 1일 서울중앙지검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인 A씨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통화에서 A씨는 유씨에게 “국제 금융 돈세탁 사기 피의사건에 당신이 연루됐다”면서 “현금을 인출해 금융감독원 직원에게 전달하면 당신이 피의자가 아니라 범죄 피해자임을 증명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거짓말을 했다.

이에 속은 유씨는 현금을 인출해 A씨가 지시한 장소에 나갔다. 그곳에는 대면책 박모씨가 있었다. 박씨는 마치 자신이 금융감독원 직원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미리 소지하고 있던 금융위원회위원장 명의의 문서를 유씨에게 제시했다.

이후 유씨로부터 현금을 받은 박씨는 A씨의 지시대로 그 중 얼마를 자신이 가진 후 나머지 돈을 A씨가 지시하는 계좌로 무통장 송금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같은 수법으로 박씨에 당한 사람만 6명이며, 피해 금액은 총 1억 355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천만원의 피해가 발생했으나 피싱조직의 우두머리는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 그 이유는 범행에 가담한 박씨가 신원불상의 A씨에게 지시를 받고 움직였기 때문이다. 박씨는 지난 1월 하순경 ‘고수익 구인구직 단기알바 인원모집, 고수익 보장합니다’라는 내용의 온라인 광고를 보고 A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후 박씨는 A씨로부터 “돈세탁 관련한 일이라 불법적인 일이다. 돈을 수금해서 지정하는 계좌로 이체를 해주면 거리에 따라 10~40만원까지 수당을 지급하겠다”는 취지의 제안을 받고 이를 수락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전직검사 “피싱조직 검거, 어려워”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가 잘 잡히지 않는 것과 관련해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피싱조직의) 전달책이나 대면책은 자신의 역할 외엔 나머지 위에 있는 사람들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조직에서는 대포폰 등을 사용해 연락하기 때문에 수사를 해도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 조직원보다는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범행에 가담한 대면책이나 전달책이 주로 잡힌다”며 “조직 간에도 가입자 내역이 남지 않는 중국 메신저 위쳇으로 여러 계정을 만들어 사용하고, 적발되더라도 쉽게 탈퇴하기 때문에 수사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보이스피싱 범죄 피의자는 일반적인 사기 사건보다 수위가 높은 처벌을 받고 거의 대부분 구속된다”며 “경찰이나 검찰로서도 실적을 올릴 수 있어 수사 의지는 크지만 그만큼 잡기 어려운 것이 피싱조직”이라고 설명했다.

◆“검·경 수사 부진” 비판도 나와

한편 일각에선 추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피해자들을 중심으로는 경찰과 검찰의 수사가 더 촘촘하게 이뤄져야 하며 피해자들의 목소리에도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 가족은 “청년의 꿈을 키우던 가정의 아주 소중한 것들을 앗아간 그들에게 마땅한 처벌이 될 수 있도록 보다 철저한 수사가 필요했다”며 “이런 피해 사례를 미진한 수사로 대책 없이 끝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수많은 증거자료, 사진, 음성파일 등을 보관하고 있지만 경찰은 요구하지 않았다”면서 “피해자의 요청이나 요구는 형식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주장했다.

보이스피싱 범죄 예방 포스터. (출처: 금융감독원)
보이스피싱 범죄 예방 포스터. (출처: 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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