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문준영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 위원이 20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고(故) 장자연씨 사망 의혹 사건’ 관련 최종 심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5.20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문준영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 위원이 20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고(故) 장자연씨 사망 의혹 사건’ 관련 최종 심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5.20
 

장씨에게 술접대 강요 사실로…조선일보 경찰외압 확인돼

증명된 혐의 공소시효 완료… 당시 수사 미진에 증거부족

‘재수사 불가’에 조사단 내 반발… “성범죄 수사권고 가능”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무려 13개월간 이어진 ‘장자연 리스트 의혹 사건’의 진상 조사 결과는 ‘재수사 불가’였다.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지난 20일 발표했다. 하지만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에 참여했던 일부 단원들이 결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과연 과거사위의 결론이 합당한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과거사위와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은 이명박 정부 시절 용산 참사 사건에 대한 결과를 이달 중 발표하면서 모든 활동을 종료한다. 여러 차례 활동 기간을 연장한 끝에 과거사위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관련 사건, 고(故)장자연씨 관련 사건 등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 할 수 있었다.

이번 진상 조사 결과가 고인의 억울한 죽음을 풀 수 있을 지 많은 주목을 받았다. 과거사위는 먼저 유력 인사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대해선 실물을 확인할 수 없고, 진술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고 봤다.

장씨가 소속사와의 불합리한 계약에 근거해 술접대 등을 강요받은 여러 정황에 대해선 사실로 인정했다. 장씨가 작성한 문건에 담긴 ‘조선일보 방사장’과 ‘조선일보 사장 아들’에 대한 술접대도 사실로 확인했다. 조선일보가 당시 경찰 수사에 외압을 가한 점도 드러났다.

다만 과거사위는 재수사를 권고하는 데에 있어선 극도로 신중했다. 우선 대부분의 혐의의 공소시효가 종료됐다. 장씨의 소속사 사장 김모씨의 강요 또는 강요미수 혐의, 조선일보가 경찰을 협박한 혐의(특수협박) 등이 모두 2016년에 공소시효가 완성됐다.

장씨가 성폭행 등의 피해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강간과 강간미수 혐의에 대해선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다. 특수강간과 강간치상 여부에 대해선 공소시효가 남아있지만, 이와 관련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게 과거사위 설명이다.

고(故) 장자연씨. ⓒ천지일보 DB
고(故) 장자연씨. ⓒ천지일보 DB

재수사 권고가 어려워진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이런 ‘증거’의 존재 여부였다. 과거사위는 경찰의 초동수사가 매우 미진했다고 지적했다. 조사단에 따르면 2009년 3월 장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경찰은 침실만 수색하고 옷방은 찾아보지 않았고, 심지어 장씨가 들고 다니던 가방도 열어보지 않았다.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는 장씨의 수첩·다이어리·명함 등도 확보하지 않았다. 경찰이 장씨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한 시간은 불과 57분이었다.

장씨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결과도 수사기관이 정리한 내용엔 통화기록 추출 여부에 대한 언급이 없었으나, 통신사의 통신자료엔 통화내역이 다수 있는 등 결과 자체도 석연치 않다고 조사단은 지적했다.

당시 수사검사 역시 압수수색 물품의 사본을 만들어 기록에 첨부하도록 지휘하지 않았고, 장씨와 김씨 등 주요 인물의 통화내역을 비롯해 휴대전와와 컴퓨터 등의 디지털포렌식 결과 등을 현재 보존된 수사기록에 편철하지 않았다고 과거사위는 꼬집었다.

조사단은 이렇게 방대한 분량의 증거가 기록에 누락된 것은 당시 수사에 참여한 검·경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일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일보 일가 수사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과거사위는 당시 검찰이 소속사 사장 김씨의 ‘2008년 7월 17일 조선일보 사장 오찬’ 스케줄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무관하다는 점에 치중, 장씨가 문건에 ‘조선일보 방 사장’이라고 적은 인물을 확인하기 위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0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고(故) 장자연씨 사망 의혹 사건’의 재수사 권고 여부를 결정하는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 회의가 열리고 있다.  ⓒ천지일보 2019.5.20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0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고(故) 장자연씨 사망 의혹 사건’의 재수사 권고 여부를 결정하는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 회의가 열리고 있다.  ⓒ천지일보 2019.5.20

또 ‘오찬 약속 속 방 사장이 당시 스포츠조선 사장이던 하모씨를 말한다’는 김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음에도 이를 근거로 방상훈 사장을 불기소 처분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과거사위는 장씨가 방상훈 사장이 아닌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을 ‘조선일보 방 사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2007년 10월 경 한 중식당에서 방용훈 사장과 장씨의 만남이 확인됐고, 몇몇 술자리에서 방용훈 사장이 ‘조선일보 방 사장’이라고 불리는 점 등이 그 이유였다. 과거사위는 “(수사검사의 당시 태도가) 방상훈 사장과 방용훈 사장에 대한 추가적인 수사가 이뤄지지 않도록 은폐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이번 발표에서 과거사위는 “조선일보가 경찰 수사에 외압을 가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따라 당시 수사가 미진했던 원인으로 조선일보가 지목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과거사위도 진실을 규명하는 데 있어 여러 한계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이와 관련해 검사 출신인 오선희 변호사는 “피해 당사자가 숨진 뒤 시간이 많이 지났고, 남긴 자료 역시 너무 적었다”며 “과거사위와 조사단은 수사권이 없는 상태에서 확인하고 싶은 부분을 권고의 방식으로 밖에 할 수 없었는데, 이미 태생부터 갖고 있던 한계에서 과거사위는 나름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오 변호사는 “공소시효 등의 문제로 처벌을 못한다 하더라도 언론의 권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언론사의 힘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지난해 12월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총괄팀장 김영희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지난해 12월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총괄팀장 김영희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재수사 불가’ 결론에 진상조사단 내부에서도 반발

하지만 이 같은 과거사위의 발표에 정작 조사단원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진상조사단 총괄팀장인 김영희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 과거사조사단은 독립성과 공정성이 우선되기 때문에 외부 단원이 중심이고 내부 단원이라고 하는 검사들은 보조적인 역할에 불과하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지금 조사단, 장자연 사건 조사팀의 조사 결과에서 소수 의견에 불과했던 검사들의 의견을 주로 위원회가 이례적으로 대부분 결론으로 채택하면서 다수 의견은 완전히 묵살되는 결과가 됐다”고 지적했다.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도 출연한 김 변호사는 “성폭행 부분이 수사로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대검찰청도 어느 정도 뒤에서 조장하거나 봐준 게 있지 않나”라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역시 조사단에 참여했던 조기영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조사단의 조사 방식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런 일(성범죄)이 있었는지 여부를 수사 기관이 조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다수 의견이었다”며 “보통 성범죄의 경우는 피해자 진술 하나만 가지고 기소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성범죄에 대해 충분히 수사 권고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취지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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