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경복궁에 그려져 있는 용은 발가락이 네 개인데, 덕수궁의 용은 발가락이 다섯이다. 중국의 황제를 상징하는 용은 발가락이 다섯, 조선의 왕을 의미하는 용은 발가락이 네 개였기 때문에 경복궁의 용은 발가락이 네 개였다. 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고종이 황제로 등극하면서 덕수궁의 용이 발가락 다섯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찻잔이나 그릇을 만들 때에도 중국 황제가 쓰던 것은 발가락 다섯 달린 용의 형상을 넣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임금의 것이라도 용 발가락 네 개 달린 것이어야 했다.

임금이 입는 옷을 곤룡포(袞龍袍), 혹은 용포(龍袍), 망포(蟒袍), 어곤(御袞)이라고 하는데, 가슴과 등, 그리고 양어깨에 용의 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곤룡포에다 머리에는 익선관(翼善冠)을 쓰고, 허리에는 옥대(玉帶)를 띠고, 신발인 화(靴)를 신으면 임금의 정식 업무복인 시무복(視務服)이 되었다. 세종대왕이 조선 왕 중 최초로 곤룡포를 입었는데, 중국의 명(明)나라에서 익선관과 옥대 각 하나씩, 곤룡포 세 벌, 화(靴) 한 쌍을 보내왔던 것이다. 명나라에서 정식으로 조선의 왕을 인정했다는 의미다.

그 이후에도 명나라는 중종 때 곤룡포 한 벌을 보냈지만 선조와 인조 때에는 옷감만 보냈다. 현종 때인 1644년 명나라가 망하면서 곤룡포 보내는 일이 없어지고 조선 스스로 임금 옷을 지어 입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왕들의 곤룡포는 거의 대홍색(大紅色)이었지만, 1897년 고종이 황제에 오르면서 황색인 황룡포(黃龍袍)를 입었다. 황색은 중국의 황제들이 입는 옷의 색깔이었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일본에게 병탄(倂呑) 당한 뒤인 1919년 1월 덕수궁에서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일본 놈들이 고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고 결국 3.1 운동으로 이어졌다.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은 나름 독립국가의 임금으로 살고 싶어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국민들의 울분 속에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고종은 조선의 마지막 용이었다.

요즘은 대통령을 가리켜 용이라는 사람도 없고 대통령을 왕이나 용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잠룡이라는 말은 심심찮게 쓰고 있다. 죄를 짓고 감방에 들어간 사람을 두고 잠룡이 사라졌다고 하거나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잠룡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한다.

잠룡은 그러나 시대에 뒤떨어진 말이다. 임금을 용이라 하여 떠받드는 것처럼 잠룡 역시 장래의 임금을 높이 부르는, 권위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말이다. 잠룡을 한자(漢子)로 써보라고 하면 제대로 쓰지도 못할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잠룡, 잠룡 한다. 선배들이 그렇게 써 왔으니까 당연하게 써도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시대에 맞지 않는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 언론이라면 더욱 그렇다.

대통령과 회견을 한 기자의 태도를 두고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기자 회견의 내용을 두고 토론과 평가가 이뤄져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기자의 태도를 문제 삼고 나섰다. 주객이 전도됐다. 아직도 대통령을 용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옳지 않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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